독립하여 생명을 유지하면서 몸집이 가장 작은 놈이 박테리아(bacteria)다. 물질과 생명체의 경계에 있어 생명체를 분해하여 물질로 보내기도 하고, 물질을 모으고 결합하여 생명체를 만들기도 한다. 지구 육지의 대부분이 이것들로 덮여 있고, 사람의 몸도 수분을 뺀 부분의 10% 정도가 박테리아로 구성돼 있다. 이놈들이 적당한 활동을 하지 않고 과욕(?)을 부릴 상황이 되면 병을 만들어 내는데 이런 놈들은 별도로 병원균(세균)이라 불린다. 몸을 자연상태에 맡겨 두었던 옛날에는 황제도 종기나 부스럼 때문에 목숨을 빼앗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 박테리아에 오금을 못 펴던 인류가 승리를 선언한 계기는 페니실린 발명(1928년)이다. 발명보다 발견에 가까운데, 우연히 박테리아의 천적인 곰팡이를 찾아낸 것이다. 페니실리움이라는 이 곰팡이는 박테리아의 세포벽을 녹이는 물질을 분비해 세포액을 외부로 뽑아버리는, 결국은 말려 죽이는 기능이 있었다. 그 성분을 약으로 제조하는 데 성공한 인류는 (다소 부작용은 있지만)박테리아의 공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듯했다. 박테리아의 반격이 감지된 것은 1961년이었다. 영국에서 페니실린 등에도 끄떡없는 놈들이 발견되어 MRSA라는 이름을 얻었다.
■ MRSA라는 놈은 새로운 세포벽으로 무장하고 나와 기존 항생제로는 껍질을 녹일 수 없었다. 인류는 다시 '공성(功城) 방향'을 바꾼 밴코마이신이란 항생제를 개발했다. 하지만 MRSA는 다시 '수성(守城) 전략'을 세워 1996년부터 일본 유럽 미국 등에서 활동을 개시하며 VRSA라는 이름을 획득했다. VRSA의 활약과 함께 MRSA도 여전히 기승을 부려 인류가 발명한 최강의 항생제라는 밴코마이신마저 조금씩 무력해져가는 상황이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MRSA(혹은 VRSA)에 감염되었는데 밴코마이신으로도 치료하지 못했다는 추론이 신빙성을 얻고 있다.
■ 항생제에 대한 면역력을 갖추고 나타나는 놈들을 슈퍼박테리아라 부른다. 우리 정부가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한 놈들도 VRSA MRSA 등 6가지다. 독일에서 2주 전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돼 첫 사망자가 나온 이후 15명으로 늘었고, 스웨덴에서도 사망자가 나왔다. 감염환자는 유럽 각국에서 1,200명을 넘었다. 아직도 놈들의 정체는커녕 발생ㆍ감염 경로도 파악하지 못했다. 한때 스페인 오이가 주범으로 몰렸으나 독일 당국이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끊임없는 슈퍼박테리아의 출현은 항생제 오ㆍ남용 때문이라고 한다. 창과 방패의 경쟁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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