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시사회 때 울먹거렸다. 나를 포함한 평론가들의 모진 평 때문에. '김기덕 감독이 참 여린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벌써 다섯 번째 영화를 만든 중견 감독인데도 울먹이며 감정을 다 노출시키는 저 사람이 손목을 자르고 낚시 줄에 인간의 몸뚱이를 매다는 바로 그 감독 맞나 싶었다.
그런 김기덕 감독의 영화 '아리랑'이 칸에서 '주목할만한 시선상'을 탔다. 그는 연출 배우 촬영까지 1인 3역을 해냈고,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어 한국 영화계를 호되게 비판했다고 한다. 아직 시사회 전이라 세부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아끼던 제자에 대한 배신감, 함께 제작한 영화의 흥행 수익을 횡령한 프로듀서에 대한 분노까지 가감 없이 영화에 담겼다는 소식이다.
활화산 같은 에너지로 해마다 영화를 만들고, 세계 영화인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은 이 감독을 누가 무슨 이유로 3년씩이나 산에서 칩거하게 만들었을까.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만드는 영화에서 '사람들은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짐승 같은 존재이고, 세상은 정글'이라고 설파하던 감독 스스로 정글 같은 영화계에서 돈을 떼이고 마음에도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아리랑'은 감독 본인의 마음 상태를 거울처럼 비추어 본 한편의 핏빛 치유일기 같은 것이리라.
분명한 것은 김기덕은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고, 좋은 영화 선생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영화다'의 장훈 감독,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의 장철수 감독, '아름답다'의 전재홍 감독은 모두 2010년 한국 영화계의 빛나는 수확이자 앞날을 기대하게 하는 젊은 인재들이다. 이들의 영화에서 발하는 자기 파괴적인 인간의 본성, 무시무시한 리비도와 타나토스의 에너지, 그러면서도 서정적이고 인상적인 시각 이미지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감히 숨기지 못한다.
그러니 김기덕 감독, 돌아 오라. 그의 전작들을 살펴 보았을 때, 그가 제자에게 쏟아 부었을 심리적 융합의 정도와 또 관계를 분리하는 경험의 어려움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2006년 영화 '시간'이 흥행에 실패하면 영화계를 떠나 은퇴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영화를 다시 찍지 않았던가.
자신의 삶을 구원하는 유일한 통로인 영화를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 영화계 역시 김기덕이란 뜨거운 감자를 되돌아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김기덕 감독의 한국 영화 비판이 아무리 과격하고 불편하더라도, 칸 영화제를 거쳐 세계에 까발려진 우리 영화계의 복마전은 한 감독이 느끼는 왜곡된 편견만은 아닐 것이다. 몇 년 사이 수 많은 인력이 들고 나는 한국 영화계는 애정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끝으로 김기덕 감독이 제작자로서 모처럼 선 보이는 영화 '풍산개'가 관객의 관심과 사랑을 받길 기대한다. 데뷔작 '악어'처럼 제목만으로도 야성적인 냄새가 물씬한 이번 영화는 아마도 김기덕 감독의 폭압적인 상상력과 제자 전재홍 감독의 흥행적 감수성이 잘 맞아 떨어지는 절묘한 시너지 효과를 내지 않았을까 점쳐 본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활'의 엔딩 자막은 이렇게 끝난다. '팽팽함에는 강인함과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 죽을 때까지 활처럼 살고 싶다'. 팽팽하게 살아 노래하는 활처럼, 칸을 거쳐 다시 한번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세계가 만개하기를 기다려 본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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