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문화현장, 사흘간의 동행] (21) 심야 라디오 '푸른밤, 정엽입니다' 제작 현장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문화현장, 사흘간의 동행] (21) 심야 라디오 '푸른밤, 정엽입니다' 제작 현장

입력
2011.06.01 10:15
0 0

■ '잠 못드는 그대'를 위한 긴장의 순간들…마침내 멜로디가 되고, 감성이 되고

심야의 라디오는 대부분 혼자 듣는다. 푸르고 깊은 밤, 외로움이 정점을 찍을 때 민감한 촉수를 가진 이들은 홀로 라디오를 찾는다. 무언가 위로받고 싶어서다. 그때 들려오는 나지막한 음성. DJ의 한마디 한마디는 그들의 감성에 그대로 파고들어 따뜻한 기운을 퍼뜨린다. 멀티태스크가 아니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뭐든 빨리빨리를 강요하는 시대에 라디오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가는 시간이, 세상이 또 우리에게 라디오를 찾게 한다. 이런저런 고민에 잠 못 드는 그대들의 가슴을 적시는 감성충만 심야 라디오 제작 현장을 찾았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심야 DJ에 꼭 어울리는 가수 정엽이 진행하는 MBC FM4U(91.9㎒) ‘푸른밤, 정엽입니다’(푸른밤)는 지난해 10월 18일 첫방송 이후 7개월 만에 꽤 두터운 청취 층을 확보했다. DJ 정엽, 그리고 PD와 작가들은 자정 생방송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여의도 MBC 7층 라디오 스테이션의 문을 연다.

생방송 10분 전

30일 밤 11시50분 생방송을 10여분 앞둔 시간. 정엽은 스튜디오 마이크 앞에 앉아 마지막으로 원고를 점검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있다. ‘음음’ 헛기침을 하고, ‘아~부~’ 입을 푼다. 그 오른 편에는 송명석(34) PD가 대본을 체크하고 선곡을 확인하고 있다. 펜을 든 정엽은 대본을 자신의 입말로 바꾼 부분을 확인하고 곳곳에 표시를 해 둔다. 스튜디오 바깥 데스크에는 푸른밤의 메인작가 신경민(31)씨와 서브작가 이한주(30)씨가 긴장된 모습으로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의 앞에는 모니터 두 개씩이 켜져 있다. 커서가 깜박인다. 밤 분위기에 맞춰 최소한의 백열등 조명만 남긴 컴컴한 스튜디오는 더없이 편안하고 따뜻해 보이지만 한편 긴장감이 팽팽하다.

오른쪽 모니터에는 푸른밤 홈페이지 게시판과 실시간으로 청취자들이 보내는 댓글을 모은 창이, 왼쪽에는 빈 한글 창이 띄워져 있다. 작가들은 오른쪽 청취자들이 보내온 반응 중 방송에 내보낼 것을 골라 왼쪽으로 옮겨 DJ가 읽기 좋게 정리한다. 스튜디오 안의 DJ와 PD 앞에도 같은 모니터가 있어 작가들이 띄운 내용을 볼 수 있다.

정엽이 있는 스튜디오와 유리 창으로 마주한 스튜디오에는 막내작가 김지선(29)씨가 컴퓨터로 MBC미니(실시간 인터넷 라디오)를 열고 댓글을 추릴 준비를 하고 있다. 12시 반에 투입될 게스트 옥상달빛도 이 공간에서 건반을 치며 라이브 준비에 한창이다.

12시, 송 PD가 첫곡을 튼다. 곧이어 푸른밤 시그널 음악이 깔리고 DJ 정엽이 오프닝 멘트를 한다. 애청자들에게는 친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순간이다. “5월 30일 오늘과 내일 사이 여기는 푸른밤 입니다.” 정엽이 시작을 알린다. 곧바로 작가들이 오프닝에 관한 청취자들의 반응과 댓글을 올리고 이것을 정엽이 읽는다. DJ의 음성은 더없이 차분하고 안정적이지만 스튜디오 바깥에서 작가들은 모니터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분주하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요즘에는 긴 사연은 물론 짧은 댓글조차도 띄어쓰기 없이 올리는 게 보통이라 쓸만한 반응을 추린 후, DJ가 한눈에 보고 편안한 호흡으로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게 필수다.

12시 30분 광고가 나간 후 옥상달빛이 스튜디오에 투입된다. 유쾌 발랄한 여성 듀오 옥상달빛 덕에 분위기는 더 훈훈해진다. 자존심 상하는 일, 상처받은 마음, 머리아픈 고민을 이야기하는 이날 코너에 재미있는 사연들이 소개될 때마다 바쁘게 움직이던 작가들도 스튜디오 안의 송 PD도 낄낄대며 웃는다. 업무로만 보면 바쁜 와중에 웃을 여유도 없을테지만 이들 역시 라디오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생방송에만 들어가면 힘이 불끈 솟는다”던 정엽의 얼굴도 생기가 넘친다.

12시 58분 광고가 나가는 사이 잠시 송PD가 문을 열고 나와 기지개를 켠다. 요즘에는 생방송 중 라이브 코너가 있지 않는 한 따로 엔지니어를 두지 않는다. PD가 직접 음악을 틀고 엔지니어 역할까지 한다. DJ가 직접 선곡에 관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PD가 그날의 분위기와 대본에 맞는 곡을 고른다. 정엽은 전날 함께 술자리를 가졌던 옥상달빛 멤버들과 얘기에 한창이다. 방송 시간이 다가오자 휴대폰 한번 들여다보고 다시 대본을 훑어보며 목을 푼다.

1시가 넘으면서 약간의 피로감이 몰려오는지 모두들 눈을 깜박거리는 횟수가 잦아졌다. 8시 녹음부터 장장 5시간 째 강행군, 지칠법한 시간이다. 푸른밤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거의 생방송으로 진행하지만, 이날은 다음날 정엽의 소주 CF 촬영 일정 때문에 부득이하게 앞서 녹음을 진행했다. 11시 좀 넘는 시간까지 녹음하고 바로 생방송에 들어간 터.

7시 좀 넘어 방송사에 도착한 정엽은 8시부터 작은 녹음 스튜디오에서 화요일 방송 녹음에 들어갔다. 10시에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박성광 낸시랭이 도착해 화요일 ‘사랑은 착불로 온다 19금’ 코너를 마저 녹음했다. 청취자들과 1대 1로 호흡하는 게 심야 DJ의 참 맛이라지만 요즘에는 심야에도 게스트와 함께하는 코너를 꾸미는 게 대세다. 박성광 낸시랭은 첫사랑에게 쪽지를 보낸 남자친구를 어떻게 해야 하나는 사연을 놓고 이야기를 하다 흥분해 급기야 자신들의 첫사랑 이야기를 한창 늘어 놓기도 했다.

전에는 라디오 한 프로그램 당 DJ 1명, PD 1명, 작가 1명으로 구성되는 게 보통이었는데 요즘에는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예능프로처럼 흥미로운 코너들을 많이 넣는 추세라 작가 수도 늘었다. 메인작가가 오프닝과 마무리멘트, 그리고 중요한 코너 몇 개를 맡는다. 서브작가는 코너 몇 개와 댓글 등 실시간 반응을 담당하고, 막내작가는 코너 1, 2개와 청취자 사연 정리 및 기타 잡무를 담당한다. 방송 중에 오는 청취자들의 문자는 1,000건 정도, 미니를 이용한 메시지는 그 이상이라 작가들은 사실 방송 중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화장실이 급하면? 제작진은 “정 급하면 휘리릭 뛰어갔다 오지만 거의 갈 생각을 못한다”고 말한다.

“올빼미 생활 힘들어도 심야 라디오는 못 버려”

제작진 모두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감내하고 있다. 보통 오후 5시에 출근해 라디오 방송이 끝나는 새벽 2시에 퇴근하는 게 일과다. 송 PD는 일찌감치 결혼한 케이스로 여섯 살, 네 살 아이를 둔 아빠다. “주말에 몰아서 놀아 준다”는 그는 업무 시간(9시간)은 그대로라 큰 불편을 느끼진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혼인 작가들은 “사실 주중에는 거의 아무것도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작가 신경민씨는 요가를, 이한주씨는 수영을 해 볼까 하는 마음이 굴뚝같지만 몇 달째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31일, 이날분 녹음은 이미 전날 끝냈지만 게스트 교체 등 회의를 위해 5시쯤 모인 제작진들은 한층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이들에게 심야 라디오의 매력과 보람에 관해 물었다.

라디오작가 9년차 신씨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하긴 하지만 비슷한 또래의 청취자들의 감성대와 통하기 때문에 즐거운 구석이 많다”며 독특한 밤 분위기가 좋다고 했다. 5년차 작가 이씨는 “원래 밤에 깨 있고 낮에 자는 올빼미 패턴으로 생활했다”며 “이제 한창 라디오작가로 일을 배우고 있는 터라 즉각적이고 섬세한 반응들이 많은 심야 프로에서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안정적인 대학 교직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뒤늦게 라디오작가의 길에 들어선 막내 김지선씨는 “아우, 저는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라며 끝을 흐렸다. 이제 1년 남짓 일했다는 그는 “모든 게 다 신기하고 재미있다”며 즐겨 듣던 심야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송 PD는 “한밤 갑자기 사람이 그리울 때 MP3가 물릴 때 따뜻함을 줄 수 있는 게 심야 라디오의 매력인 것 같다”며 “식상한 말이지만 재미와 감동, 특히 감동에 방점을 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 초보 DJ 정엽 "누구랑 경쟁하기보다 편안한 내 모습 보이고 싶어"

정엽은 4인조 남성 그룹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리더로 ‘Nothing better’ 등 여러 개의 히트곡을 가지고 있는 실력파 뮤지션이다. 최근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감미로운 목소리를 자랑하며 매력을 발산해 팬 층도 한층 두터워졌다. 그가 요즘 MBC FM의 심야 프로그램 ‘푸른밤’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DJ에 도전하고 있다. 정엽은 심야 DJ의 감성적 분위기를 지키면서도 느끼하지 않고 너무 오버하지 않는 적절한 지점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푸른밤’의 송명석PD는 “이미 정엽의 매력을 80% 이상 끌어냈다”고 자신했다.

_심야 라디오의 매력은?

“그냥 재미있다. 청취자들이랑 밀착된 느낌도 참 좋고. 방송 때 여운이 길게 남아 운 적도 있다. DJ가 청취자가 원하는 사람이 돼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는 ‘그 놈 목소리’라는 코너가 있는데 신청자가 중학교 여학생이었다. 이혼한 아버지 역할을 해 줬는데 사연이 너무 찡해서 끝나고도 눈물이 안 그쳐 혼났다. 밤 프로그램이라 연애 고민도 많이 올라온다. 각자 사정은 다 다르긴 하지만 사랑 얘기는 비슷비슷한 구석이 많은 것 같다. 다 똑 같은 고민을 하며 사는구나 싶다. 내 인생의 모토가 사랑이다. 연애 경험도 풍부하고 하니까 그쪽 방면 상담은 문제 없다(웃음).”

_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나. 놀기도 힘들고.

“원래 밤낮을 거꾸로 산다. 보통 해 뜰 때쯤 새벽 5, 6시에 잔다. 그래서 집에는 항상 암막 커튼이 쳐 있고. 자정엔 보통 음악 작업을 하거나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이제 생방송을 주 4일쯤 하다 보니 그게 뜸해진 정도다.”

_경쟁 프로그램은 역시 유희열의 라디오천국(KBS 2FM)인가?

“유희열 선배? 별로로 본다. 이제 한물 갔다(웃음). 프로그램 시작할 때 ‘유희열 선배 이기겠다’이런 기사가 나간 걸 보고 ‘날 이기겠다고? 널 짓이겨 주마’ 이런 문자가 왔다. ‘미안하다’고 답장하니 유희열이 ‘닥쳐, 전쟁이다’라는 답변을 했다. 같은 시간대 DJ들이 다들 관록 있는 분들이다. 누구랑 경쟁하기보다는 그냥 편안한 내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분위기 많이 잡을 것 같다고 하더라. 보통은 활달하고 방정맞기도 하다. 때론 감성적이지만 아주 유머러스한 부분도 있다.”

_새벽에 방송 끝나면 뭐하나.

“PD나 작가들과 사이가 돈독하다. 엠티도 갔다 왔고. 방송 끝나고 횟집 고기집에 가 술도 한잔 하고 집에도 몇 번 초대도 했다. 주로 여러 개 죽 늘어놓고 먹는 거 좋아한다. 삼합도 즐기고. 총천연색 안주들을 보면 어쩐지 흐뭇하다(옆에서 작가들은 ‘정엽 오빠가 요즘 CF도 찍고 돈도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많이 사 줘요’라고 합창했다).”

_클로징멘트 ‘우리 이제 잘까요’에 대한 주위 반응은.

“원래 ‘푸른밤’이 성시경 때 ‘잘자요’로 유명했다. 내 클로징 멘트는 친한 친구들의 경우 민망해서 잘 안 듣는다고 하더라. 술자리에서 들으면 목소리 너무 까는 것 같다고. 남자들은 그런 반응이지만 여자 동생들은 잘 어울린다고 해 준다.”

_라디오 외에 계획은.

“회사에서는 한창 주가가 올랐을 때 빨리 음반 내자고 서두르는데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 9월쯤 음반을 낼 수 있도록 앞으로 라디오 외에 활동은 줄이고 열심히 곡을 만들 생각이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