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루마리처럼 말아도 선명한 화면… '꿈의 디스플레이' 눈앞에
26일 경기 의왕의 제일모직 연구개발(R&D)센터의 플렉서블(flexible) 디스플레이 연구실. 연구원들이 투명한 판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두루마리 휴지 마냥 돌돌 말아본다. 김성국 담당은"무기 물질(유리 섬유)과 유기 물질(여러 화학 물질)의 결합으로 새로 태어난 물질로 만든 것"이라며"휘거나 구부려도 유리처럼 투명하게 보일 수 있다고 해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꿈의 디스플레이'라 불리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는 미래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할 기술로 꼽힌다. 1900년대 후반부터 100년 가까이 디스플레이 시장은 브라운관(CRTㆍ Cathode Ray Tube)이 주도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얇으면서도 크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을 지닌 액정디스플레이(LCDㆍLiquid Crystal Display)와 플라즈마 디스플레이패널(PDPㆍPlasma Display Panel) 등 '평판디스플레이'(FPDㆍFlat Panel Display)가 대신했다. 이어 AMOLED는 2007년부터 휴대폰 등 중소형 제품에 본격적으로 쓰이면서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김 담당은"AMOLED 이후 차세대 디스플레이는 기존 기술보다 훨씬 얇고, 가볍고, 전력을 덜 쓰고, 어떤 모양으로도 디자인 할 수 있고, 쉽게 들고 다닐 수 있어야 하고,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여 인간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며 "플렉서블 디스플레이가 바로 그런 특성을 지닌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기존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유리 기판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것이 기술 개발의 핵심. 김 담당은 "수 백 년 동안 인류가 써 온 디스플레이의 중심을 차지했던 유리는 열에 잘 견디고 투명한 장점이 있지만 쉽게 깨지고, 유연하지 못한데다 0.5m~1.0m의 두께를 써야 하기 때문에 무겁다"며 "바로 이 유리를 대체할 기판을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특이한 건 유리의 한계를 극복하는 소재를 만드는 데 유리 섬유(Glass Fiber)가 쓰인다는 점. 이는 유리를 녹여 이를 기계를 이용해 잡아당기거나 공기ㆍ수증기로 날리거나 원심력에 의해 주위에 날려 붙이는 방법 등으로 만드는 데, 방탄용 군복, 테니스 라켓, 컴퓨터 메인 보드 등에 널리 쓰이고 있다.
김 담당은 "열에 잘 견디는 무기물(유리섬유)의 장점과 유연성이 뛰어난 유기물의 장점을 모두 살리기 위해 유리섬유와 여러 화학 물질을 섞어 만든 물질을 혼합한다"며 "무기물과 유기물은 기본적으로 굴절률이 달라 조금만 어긋나도 투명함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온도, 시간, 굳는 속도 등 여러 변수들을 끊임 없이 바꿔가면서 궁합이 가장 잘 맞는 짝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기준으로 디스플레이용 유리 기판 시장 규모는 20조원. 이를 대체할 플라스틱 기판을 만든다면 이 비용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지식경제부의 세계시장선점 소재 10대 사업(WPMㆍWorld Premier Material)에 뽑혔다. ▦제일모직을 중심으로 한 팀이 새로운 플라스틱 소재ㆍ필름(1단계) ▦LG화학을 중심으로 한 팀은 새롭게 만든 플라스틱 기판의 미세한 틈으로 산소나 물기가 스며드는 것을 막아 유기물과 무기물이 잘 결합하도록 하는 배리어(Barrier) 코팅 소재(2단계) ▦잉크테크를 중심으로 한 팀은 이렇게 기판 위에 전기가 흐르도록 하는 투명 전극층(3단계) 개발을 맡고 있다. 김성국 담당은 "올해 하반기면 여기서 만든 새로운 플라스틱 기판을 2단계 팀으로 넘길 수 있을 것"이라며 "3~4년이면 기술 개발에서 구체적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시장은 2018년 세계 시장 규모가 17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보이며 이 중 34% 점유율, 5조8,000억원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정규하 전무(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사업단장)는 "최종적으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로 40인치급 TV나 80인치 광고판 그리고 LCD, OLED 플라스틱 기판 소재를 만드는 게 목표"라며 "삼성전자나 LG디스플레이 등에서는 패널을 구현하는 데 이를 활용할 것으로 보이고 현대ㆍ기아차에서는 고급차 중심으로 자동차의 유리를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평면 개념만 있던 광고 시장 역시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보, 그 규모가 무궁무진해 질 전망이다.
특히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이끌고 있는 우리로서는 다른 분야보다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정 전무는 "일본의 스미토모 화학이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게 사실이지만 따라 잡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기존 디스플레이의 한계를 뛰어넘어 응용 분야가 무한한 차세대 국가 성장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의왕=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소재 강국으로 가려면…
지난 10년 동안 우리 부품소재 산업은 눈에 띌 만큼 성장했다. 부품소재 분야의 무역 흑자가 2001년 27억 달러에서 2010년 779억 달러로 28배나 증가했다. 또 400여 개 남짓이었던 부품소재 관련 기업이 3,200개 이상으로 늘어나 일자리 창출 등 국가 경제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이 같은 성장의 밑바탕에는 '부품소재 특별법'이 자리하고 있다.
이 법은 부품 소재 분야에서 대일 무역 적자가 심각해지면서 부품 소재 분야를 집중적으로 키워 수출 경쟁력을 높이자는 뜻에서 2000년 만들어, 이듬해부터 시행됐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부품 소재 기업에 대한 예산 지원, 인프라 제공, 기술 개발 결과 공유 등 정책적 뒷받침을 하려 할 때 이 법이 있었기에 절차를 줄이고 업계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법은 10년 한시법이고, 때문에 올해 말이면 효력을 잃는다. 정부는 현재 이 법의 개정안을 만들어, 그 효력을 2021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경부 관계자는"특히 앞으로 소재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이 법의 연장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2006년까지는 정부의 부품소재 관련 지원이 부품 분야에 쏠려 있었다. 지경부 산하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의 서영주 원장은 "부품은 경쟁국에 비해 기술력이 좀 떨어져도 3~4년이면 따라잡을 수 있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금방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부품 분야를 먼저 키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부품 보다 소재 분야의 원천 기술 확보를 개별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핵심으로 꼽고 있다. 실제 제조업종의 대기업들은 영업 이익률이 10% 안팎이지만 포스코, 다우케미컬, 머크 등 국내외 소재 기업들은 영업 이익률이 20%를 뛰어넘는다.
특히 이번 개정안에는'신뢰성 인증제도를 민간으로 이양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서 원장은 "10년 전만 해도 중견, 중소기업들은 품질을 비롯한 제품의 신뢰도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무조건 판매에만 집중했다"며"그 때문에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신뢰도를 잃고 선진국 등 새로운 수출선을 찾을 때 애를 먹었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중소기업도 생존을 위해서 신뢰도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것.
특히 삼성, LG, 현대차 등 우리 대기업이 해외 시장에서 품질과 신뢰성 면에서 과거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굳이 정부가 주도하기 보다는 민간 기업을 통해 좀 더 효율적으로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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