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원대의 금융 비리를 저지른 부산저축은행그룹이 청와대에도 구명 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의 양상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권력형 게이트'로 판 자체가 완전히 커진 셈이다.
현재까지 검찰 수사로 드러난 청와대 로비 의혹의 축은 두 갈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의혹이 제기되는 인물은 지난해 7월부터 부산저축은행과 고문변호사 계약을 맺고 5개월 간 활동했던 박종록(59) 변호사.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이 지난해 말 박 변호사에게 월 200만원의 고문료 외에 별도의 사례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또 이후 박 변호사가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대구경북 동향 출신인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부산저축은행 퇴출 저지를 도와달라'는 취지의 청탁 전화를 건 정황도 포착, 사례금 수수의 진위 여부와 함께 권 수석과 통화가 이뤄지게 된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중순쯤 권 수석과 통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부산저축은행이 아니라 저축은행 전반에 대해 물어봤고 '저축은행 전반이 여러 면에서 문제가 돼 정부 차원에서 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걸로 알고 있다'는 답변을 들은 게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금융감독원과 감사원에 부산저축은행을 위한 탄원서를 보내긴 했지만 이는 고문변호사 자격으로 행한 정상적 활동이며, 청와대에는 (탄원서를) 보내지 않았다"며 "부산저축은행 건과 관련해 공무원을 만난 적도, 불법적인 로비를 한 적도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부산저축은행이 올해 2월 결국 영업정지됐다는 점에서, 박 변호사의 퇴출 저지 청탁이 있었다 해도 이를 '성공한 로비'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관련 진술이 확보된 이상 검찰로서는 박 변호사와 권 수석의 통화 이전과 이후의 모든 과정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로비 의혹의 알파와 오메가를 모두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다.
부산저축은행이 청와대 로비를 위해 활용한 또다른 통로는 '브로커 박씨'로 현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명문대 교수 출신에 소망교회 장로인 박씨는 이 대통령과 교회 소모임 활동을 함께한 적이 있고, 이상득 의원과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과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씨가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 3월 중순 캐나다로 도피, 수사팀이 그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박씨의 존재를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씨가 실제로 부산저축은행이 브로커 윤여성(56ㆍ구속)씨 외에 활용했던 제2의 브로커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는 상태다. 박씨는 지난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사회생활을 오래 한지라 현 정권 인사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산저축은행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며 "로비 의혹도 터무니없는 소설"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브로커 박씨'의 실체를 놓고 다른 이름들도 거론되고 있다. 이 인물이 자신의 실명이 아닌, 소망교회 장로 박씨의 이름을 팔고 다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2의 브로커의 실체는 아직 베일에 가려 있는 셈이다.
아무튼 부산저축은행이 금융감독원, 감사원, 국세청에 이어 청와대에까지 문어발식 로비를 펼친 것만은 분명하다. 수사 대상이 대폭 확대됨에 따라 검찰 수사의 장기화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검찰 관계자는 "부산저축은행 수사 1라운드가 저축은행 내부 비리, 2라운드가 금감원과의 유착관계를 밝히는 것이었다면 이제부터 클라이막스인 3라운드가 시작된 셈"이라며 "일찍 수사를 끝내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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