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1시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한 도시락가게. 아직 정식으로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주방이 왁자지껄하다. "쌈은 손이 너무 많이 가네." "그럼 하지 말자." "쌈밥이 제일 인기란 말이야." 매장 안 8명의 10대, 20대의 목소리는 잠시도 쉴 기미가 없다.
이곳은 31일 문을 여는 도시락배달가게 '소풍가는고양이'다.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가 지난해부터 운영해온 '연금술사 프로젝트' 2기로 참가한 청(소)년 6명이 창업한 가게다. 모두들 "내 앞가림은 내가 하고 싶다" "대학에 간다고 미래가 보장되는 건 아니지 않나"라는 마음에 참여했다고 입을 모았다.
언뜻 꿈을 펼치는 모험정신 정도로 여길 수 있을 테지만 실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좌절 등 아픈 구석들이 있다. 김단미(24ㆍ가명)씨는 "메이크업 전공이라 학원도 다니고, 자격증도 땄는데 연줄이 없어 직장 잡기가 쉽지 않더라"고 했다. 이푸푸(20ㆍ가명)씨 역시 "미대 입시를 준비하다 너무 힘들어 몇 번을 포기했다"고 했다.
20명의 후보자 중 뽑힌 청년 6명이 지난 1월부터 "뭘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망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을까" 고민해 왔고, 도시락배달 사업을 하기로 결정한 이후에는 한 달간 합숙까지 하며 준비했다. 나름 수익률도 분석했다.
사업초보라 도움을 주는 이도 많다. 재단법인 해피빈 권혁일 대표가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한 돈으로 초기 창업자본을 마련했고, 아직 서툰 음식 솜씨를 고려해 인근 성미산마을에서 10년간 '동네부엌'이라는 반찬가게를 운영한 박미현씨를 후원자로 삼았다. 박진숙(42)씨와 차주희(27)씨 등은 직접 매장에서 매니저로서 "가게가 연착륙할 때까지" 도울 예정이다.
초반 상황은 순조롭다. 오픈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배달이 밀려들고 있다. 이날도 오후 4시까지 200인분(쌈밥 200개, 주먹밥 200개) 배달이 잡혔다. 김여울(20ㆍ가명)씨는 "빨리 만들어야 한다"며 만든 주먹밥들을 저울에 달고 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가게 주먹밥의 표준무게는 400g이다.
도시락 사업의 관건은 누가 뭐래도 맛. 차주희씨는 "30년 경력의 도시락 장인이 가르쳤고 당분간은 돕기로 했다. 조미료 없이 100% 유기농 재료만 쓴다"고 말했다. 염치 불구하고 먹어보니 실제로 맛있었다.
소풍가는고양이의 메뉴는 간단한 주먹밥과 쌈밥 등 1,500원에서 4,000원까지가 있고, 산 들 바다 등의 이름이 붙은 8,000원짜리 건강 도시락도 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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