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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강의를 찾아서] 조광 교수 '한국문화의 인문학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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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강의를 찾아서] 조광 교수 '한국문화의 인문학적 성찰'

입력
2011.05.2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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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治주의가 우리 문화 지켜내… 지배층의 자기억제가 저력"

문화란 무엇인가. 인류가 만들어낸 철학 예술 과학 따위를 흔히 문화로 정의한다. 의미를 확장시켜 사람이 사회 안에서 배워온 행동이나 여러 행동의 결과물이라고 규정짓는 학자들도 있다. 인문학은 또 무엇인가. 해석이 분분하지만, 인간의 조건과 특성을 탐구하는 학문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와 인문학을 따로 떼놓고 논의하기 힘든 이유도 두 영역 모두 '인간 탐구'라는 묵직한 주제가 저변에 흐리고 있는 탓이다.

동양사학자로 널리 알려진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는 "우리 국민은 한국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 문화가 다른 나라의 그것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독자성, 독창성, 인간존중 등 장점들로 가득하다는 해석이다. 서울시 주최로 26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성백제박물관 대강당에서 시민 대상으로 열린 '즐기는 인문학' 강연에서 설파한 내용이다. 인문학의 거장들이 강사로 나서는 이 강연은 12월7일까지 한 달에 두 번씩 진행된다. 첫 번째 강사로 조 교수가 나섰다.

조 교수는 우리 문화에 대한 국민 인식이 특별히 강화된 시점을 조선후기로 파악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당시 그려졌던 맹호기상도 등을 살펴보면 알 것이다. 맹호가 중국 대륙을 향해 웅비하는 그림이다. 국토에 대한 사랑과 애호에 대한 감정들이 그대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않나. 그때 금수강산론 등이 언급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면서 원로 사학자는 '소중화론(小中華論)'을 꺼냈다. 18세기에 들어와 문화적 자부심이 어느 민족보다 강해졌고, 이게 소중화론으로 표현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중화의 아류 정도로 여겨선 곤란하다고 했다. "17, 18세기 우리가 갖고 있던 소중화론의 핵심은 '중화(중국)는 없다'였다. 청나라가 중국 대륙에 등장한 이후 중국 문화의 반쪽이 멸망했으나, 유일하게 한족의 전통문화를 이어 우리 것으로 승화시킨 민족이 조선이었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일제 식민지하에서도 우리의 문화 인식은 오히려 공고해졌다는 논리를 폈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일본은 우리 문화와 관련해 모방성과 아류를 강조했다. 한마디로 한국 문화는 독창성이 없다는 식으로 폄훼한 것이다. 불교와 유교 문화의 연원이 인도 중국 같은 다른 나라여서 조선의 문화는 별볼일 없다는 무시였다. 중심이 아니고 주변이라고 우리 국민을 호도했던 것이 일본의 식민사관적 문화인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민사관이 대두했을 때 우리는 민족주의 인식을 갖고 문화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석굴암 고려청자 고구려벽화 등 주변국가 어디도 쫓아올 수 없는 찬란한 민족문화의 웅건함을 강조했다. 민족문화론을 고수했던 것이다."

우리 문화의 독자성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아시아에서 한자 문화는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서너 곳밖에 없다. 화교 문화가 정착이 안 되는 나라는 지구상에 단 두 곳이다. 한국과 북한이다. 왜 그랬겠는가. 중국 주변에 있으면서도 한반도는 문화의 독자성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중국화가 안 됐으며, 화교 문화 역시 그래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조 교수는 그러나 문화의 재창조 측면에선 우리 문화가 낙제점 수준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원래 문화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창조성과 더불어 재창조성이다. 재창조가 없으면 문화는 화석화하고 만다. 우리는 인류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였다.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가 위대한 이유는 지식을 보편화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는 금속활자 발명에 그쳤을 뿐 이를 재창조하지 못했다. 인쇄기계 인쇄잉크 종이재질 등 금속활자 창조에 따른 후속조치를 취해 지식의 보편화에 기여했어야 했으나 실패했다. 문화의 의미로만 본다면 고려 금속활자보다는 구텐베르크에 더 감사해야 할 것이다."

조 교수는 문치주의의 특성이 우리 문화를 이만큼 지켜냈다는 평가도 했다. "우리는 문화의 독자성을 유지하려고 무력으로 중국을 상대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 판단이 결국엔 옳았다. 무(武)가 아닌 문(文)으로 상대해야 중국과 대등하거나 우월할 수 있다는 전략이었는데 이게 적중했다. 한자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 우리 사상으로 발전시킨 뒤 중국에 대응해 나갔다. 중국보다 월등히 세밀하고 잘 가다듬었다. 임진왜란 때도 마찬가지다. 문의 정신이 나라를 지배했다. 의병을 일으킨 것은 총자루 한번 잡아본 적이 없었던 문인들이었다. 군사 지식이 없었으나 지휘관을 자처한 게 문인들이었다. 의를 위한 희생이 문치주의의 핵심이다."

이것으로 한국 문화의 모든 특징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수 있을까. 조 교수는 "인간성 존중 문화를 추가해야 옳다"고 덧붙였다. 지배층의 자기억제력이 작용했기에 가능했다는 진단이다. "조선 시대 때 집을 99칸 이상 짓지 못하게 한 이유는 권력층의 무한착취를 막기 위해서다. 바로 이런 것이 우리 문화다. 통치술이 그만큼 발달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광주의 1만2,000석 부잣집 주인은 평생 초가집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지배층의 자기억제력, 이웃에 대한 배려라고 해도 좋을 이런 인간 존중이 우리 문화의 저력이다."

강의의 종착역은 미래 문화에 대한 전망이었다. 그는 상생과 화해의 문화가 미래국가발전을 좌우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치ㆍ사회ㆍ문화 권력자들은 서로 상대를 이해하고 자기억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권력층이 거들먹거리는 나라는 선진국 진입이 어렵다. 설령 진입했더라도 대립과 갈등만 낳을 뿐이다. 상생과 화해를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고,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인류애로 문화의 가치를 확장시켜야 한다."

■ 재창조 못한 우리의 도자문화

조광 교수는 2시간여의 강연 내내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하면서도 일부 문화의 재창조에 실패한 부분은 뼈아프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을 점할 수 있었는데도 재창조 실패로 뒤처진 대표적인 사례로 일본에 질질 끌려가고 있는 도자 문화를 꼽았다.

임진왜란이 분수령이었다. 당시 내노라하는 국내 도공(陶工)들은 모두 경기 지역에 모여 있었다가 피신했다. 왜군이 이들을 데려간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뿔뿔이 흩어져 숨었다. 하지만 경남 밀양 등 지방에 거주하던 무명의 도공들은 왜군에 의해 끌려갔다. 지방의 이름없는 도공들을 데려간 일본은 이들의 도자 기술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 일본 도자의 뿌리가 한국이 된 이유다.

무명의 도공들은 일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유명 도공 못지 않은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든 도자기는 훗날 메이지(明治) 유신 시절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데 한 몫 했다. 우리 도공들이 만든 도자기를 팔아 메이지 유신에 소요될 자금을 마련했던 것이다. 이미 이 때 서방선진국들은 일본의 도자기술을 인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땠나. 조 교수는 "당시 우리는 밥그릇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고, 일본 도자를 역수입하는 치욕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일본 도자문화는 재창조에 완전히 성공했으나, 반대로 조정의 무관심으로 훌륭한 도자 기술을 후손에 남기지 않은 우리는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문화의 재창조는 정부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다는 조언이다.

■ 조광 교수는

●1945년 서울 출생. 대표적인 한국사 학자로 통한다. ●가톨릭대를 졸업한 뒤 고려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정년 퇴임했으며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다. ●한일역사 공동위원회 위원장, 한국사연구회 회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국사학사의 인식과 과제> , <조선후기 사회의 이해> , <한일 역사의 쟁점> 등의 저서가 있다.

김진각 편집위원 kimjg@hk.co.kr

사진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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