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최인호 지음/여백미디어 발행·391쪽·1만2,800원
부인이나 딸이 가짜 혹은 타인처럼 느껴지고 늘 쓰던 물건이 달라진 것 같은, 그러니까 낯익은 일상이 불현듯 낯설게 느껴지는 감각인 섬뜩함은 프로이트 이래 정신분석학이 즐겨 탐구해 온 대상. 정신분석학은 이를 억압된 것이 되살아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으로 설명하는데 일상에 틈입해 온 것은 무의식적 욕망이자 내 안에 숨은 낯선 타인인 것이다.
2008년 침샘암 수술을 받은 뒤 3년째 항암치료를 받으며 투병 중인 소설가 최인호(66)씨가 5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가 다루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이 테마다. 지난 30여년간 주로 대하역사소설을 써 왔던 작가가 자신의 문학적 명성을 밝혀 줬던 초기 작품 경향인 도회적 감수성의 현대소설로 돌아온 것이다. 최씨는 "원래 내 본령은 현대소설"이라며 "단거리 주법을 되찾고 싶었다가 덜컥 암에 걸렸는데,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는 암이 내게 선물한 단거리 주법의 처녀작"이라고 밝혔다. 그는 손톱 한 개와 발톱 두 개가 빠지는 항암치료의 고통 속에서도 두 달 만에 직접 손으로 집필했다고 한다. 낯익은> 낯익은>
소설은 어느 날 아침 자명종 소리에 깨어난 K가 낯익은 일상이 조금씩 어긋나고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부인과 딸도 가짜라고 여기고 사흘간 그 낯섦의 이유와 자신의 정체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정신분석학이 말해왔듯 그 낯섦은 무의식적 욕망의 돌출로 인한 자아 분열에 기인한 것인데 소설에서는 또 다른 K가 존재한다는 도플갱어 스토리로 연결된다. K가 자신의 정체를 찾는 과정에서 발기부전이니, 근친상간적 욕망, 키스방, 집창촌 등 성적인 요소들이 무수하게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소설은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문장에다 할리우드 영화 같은 서스펜스적 구성, 파워레인저니 세일러문 등 대중문화의 코드도 적극 활용하고 있어 가독성을 높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요소들이 진지한 구도적 사유를 기대한 독자들을 실망시킬 수도 있겠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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