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중흥에 중책을 맡은 새로운 수장의 목소리는 민속씨름의 에너지원인 대학씨름처럼 희망찼다.
지난 5월 초 대학씨름연맹의 수장이 된 박귀현(63) 회장은 취임 첫 걸음으로 씨름과 루차 카나리아의 국제 교류전을 택했다. 씨름의 세계화 기반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26일(한국시간) 스페인 테네리페의 라 퀸타 파크에서 만난 박 회장의 얼굴은 다소 상기됐다.
스페인 원정경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에 대해 묻자 박 회장은 주저 없이 ‘마드리드 한글학교 시범경기’를 꼽았다. 그는 “씨름의 DNA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동포 2세들은 씨름을 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지만 안다리와 밭다리 기술을 쉽게 구사했다”며 “5,000년 동안 내려온 민속씨름의 DNA를 보여주는 게 아니겠느냐”며 흡족해했다. 2007년부터 시작된 루차와 씨름의 꾸준한 국제 교류전은 씨름의 세계화 가능성을 확인시키고 있다. 박 회장은 “루차 카나리아와 씨름의 교류전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유사한 경기방식과 이에 대한 선수들의 자존심 싸움 그리고 팬들의 호응까지 씨름 세계화의 초석이 다져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의미심장한 발언을 던졌다.
한국은 샅바 규정의 변화와 각종 국제행사에서의 대외 홍보 등으로 씨름의 세계화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그러나 씨름 세계화를 위해선 정부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박 회장은 “한국에서 야구, 축구 등 입양된 스포츠에 대해 정부의 지원이 적극적이다. 하지만 ‘친자식’이라 할 수 있는 민속씨름은 너무 소홀하게 대접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직책에 오른 만큼 씨름이 다시 국민스포츠가 될 수 있도록 실천으로 보이겠다”고 강조했다.
씨름의 국민스포츠화와 세계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박 회장은 과거 천하장사대회의 황금기를 성사시킨 경험을 살려 차근히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포부다. ‘밀레니엄 천하장사대회’라 불렸던 1999년의 대회가 박 회장의 작품이었다. 그는 “당시 인천생활체육씨름협회장으로 역임했는데 마침 천하장사를 인천에서 치르게 됐다. 원래 인천도원체육관을 대관해놓았지만 동인천 인현동 대형화재 사건으로 인해 개최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대체 경기장으로 선인체육관을 선택했지만 1만1,000석의 대형 규모에 주관 방송사와 씨름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며 “그러나 결국 만원 관중이 꽉 들어찬 데서 천하장사대회를 성대하게 치렀다”고 회상했다.
위기를 전화위복으로 만들며 빼어난 수완을 뽐냈던 박 회장의 시선은 이제 민속씨름 부활의 밑거름인 대학씨름으로 향하고 있다.
테네리페=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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