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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돈이 없어 앞을 못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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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돈이 없어 앞을 못 본다면

입력
2011.05.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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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 있어서 의료 욕구의 충족은 의식주만큼이나 중요하다. 선ㆍ후진국을 막론하고 이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회는 있을 수 없다. 1967년 보건사회부는 서울, 경기, 전남 등 1,200가구에 대하여 국민건강실태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병이 나도 제대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환자의 48.9%로 나타났다. 특히 농촌에서는 98.7%나 되었으니 100명 중 1명 정도만이 병원을 찾았다는 의미다.

눈 검진ㆍ치료 혜택 60년대 수준

요즘은 의사가 남아 돌 정도이고 국가 의료보장제도도 충분히 갖추어져 있으니 이러한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필자가 2009년 한국실명예방재단에 부임해 보니 무의지역(無醫地域)에 대한 '이동 눈 검진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있었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다가, 국제적으로 G20개국에 포함된 선진 대한민국이 아닌가. 짧은 기간에 정치적으론 민주주의, 경제적 선진국을 이룩한 대한민국에서 30여년 전에나 있었을 법한 일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었다.

1년쯤 근무하다 보니 이해가 되었다. 재단은 연간 60회 '이동 눈 검진 사업'을 하여 약 1만2,000여 명을 검진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중 약 1만여 명이 눈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발견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안과진료를 받은 경험이 없는 분은 30% 정도, 약 3,000명에 이르고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60% 정도가 돈이 없어서라고 대답하고, 10% 정도가 교통이 불편해서라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두가 건강보험 또는 의료급여 대상자인데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본인부담금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에선 진료비의 20%를 본인이 부담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40% 정도를 부담하게 된다. 이는 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 제도에서 급여하지 않는 비급여 부분 때문이다. 이 문제는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제도가 보완되어도 해결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새롭게 개발되는 고가의 신(新)의료기술을 공적 의료보장제도에서 완전히 부담하여 주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매년 1만3,000여명의 시각장애인이 발생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이 중 80% 정도는 사전에 적절한 안과적 처치를 했다면 실명(失明)까지 이르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과거와 달리 백내장으로 인한 실명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농ㆍ어촌 지역에서는 시기를 놓쳐 소중한 시각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연간 백내장 수술률은 100만 명 당 4,000명 정도로 일본이나 호주와 같은 안(眼)보건 선진국의 6,000명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치고 있다. 따라서 아직도 백내장으로 인한 실명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기에 필자가 근무하는 재단에선 기초생활보장대상자 등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 대하여 백내장 등으로 인한 눈 수술을 받을 때 본인부담액을 지원하여 주고 있다. 연간 2,500여명에게 수술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는 힘들다.

'사회의 빛' 되어 준 한전의 도움

얼마 전 한국전력공사에서 회사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국내외 시각장애가 있는 50명에 대한 눈 수술비 지원에 써달라며 1억원을 기탁했다. 한전은 전기를 통해 빛(light)을 공급하고, 우리 재단은 그 빛을 인지할 수 있는 시각(sight)을 수술로 회복시켜주니 좋은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빛이 있어도 시각이 없으면 사물을 볼 수가 없다. 또 시각만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빛이 있어야 한다. 서로가 밝은 세상을 위한 필요충분 조건인 셈이다. 사회의 빛이 되어 시각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많은 손길들이 이어지길 바란다.

신언항 한국실명예방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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