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26일 10년 넘게 ‘나눠갖기’식 주유소 관리를 해온 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4대 정유사에 대해 담합혐의를 적용,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4,348억원을 부과했다. 과징금 규모로는 2009년 말 공정위가 6개 액화천연가스(LPG) 업체의 가격담합에 대해 부과했던 6,689억원에 이어 역대 두번째다.
공정위가 적발한 담합은 ‘원적(原籍)’관리. 원적이란 주유소가 영업을 시작할 때 처음 소속됐던 정유사를 가리키는 업계 용어다. 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4대 정유사들은 원적주유소에 대한 서로의 기득권을 인정, 동의 없이 주유소를 빼앗아가지 않기로 10년 넘게 담합을 해왔다는 것. 신영선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프로스포츠에서 자유계약선수가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고 싶어도 원소속 구단의 동의가 없으면 이적이 제한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정유사들은 치열하게 주유소 확보경쟁을 벌였으나 이후 석유수입개방, 복수상표표시제 도입 등으로 환경이 급변하면서 ‘경쟁을 피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실무모임을 통해 ▦원칙적으로 다른 정유사의 원적주유소에 대해선 빼오기를 하지 않기로 하고 ▦만약 어떤 정유사가 이런 합의를 깬 채 주유소를 유치하는 경우 나머지 정유사들이 공동대응에 나서며 ▦정유사와 계약관계가 끝난 무폴 주유소에 대해서도 원적기득권을 인정해 통상 3년간은 타사 상표로 변경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담합이 경쟁을 기피하게 만들고, 결국 기름값 인하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 신 국장은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4개 정유사의 폴(주유소) 점유율이 10년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석유제품의 주유소 공급가격 인하와 소비자가격 인하가 연쇄적으로 억제됐다”고 주장했다. 실제 원적관리에 대한 담합이 시작된 2000년부터는 정유사별 시장 점유율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정유업계는 이번 공정위 결정에 대해 강력 반발하며 법적 대응방침을 밝히고 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공정위가 담합의 의미를 과도하게 확대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체별 과징금은 GS칼텍스가 1,772억4,600만원으로 가장 많고 ▦SK 1,379억7,500만원 ▦현대오일뱅크 744억1,700만원 ▦에쓰오일 452억4,900만원 등이다. 그러나 GS칼텍스는 담합사실을 자진신고(리니언시)해, 과징금을 면제받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또 GS칼텍스와 가담 정도가 미약한 에쓰오일을 제외하고 SK와 현대오일뱅크에 대해 검찰 고발 조치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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