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동선은 과거와 두 가지 점에서 크게 달랐다. 처음으로 동북 3성과 남부 지역을 '세트'로 둘러 봤다는 것과 양저우(揚州)를 방문했다는 점이다. 북중경협 등 경제 문제에 대한 관심을 표시하면서 개혁ㆍ개방 이후 중국 지도부의 중핵으로 자리 잡은 '상하이방(上海幇)'과 관계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속내를 내보였다.
김 위원장이 북한 최고권좌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중국 방문은 베이징(北京)-톈진(天津) 등 중부로 한정하든가, 남쪽 상하이나 북동쪽 창춘(長春)의 한쪽 방향이었다. 첫 방중이던 2000년 5월에는 베이징만 다녀갔고, 그 뒤 2004년 4월과 지난해 5월에는 베이징, 톈진, 다롄(大連) 등 중부 주요 도시로 동선을 한정했다. 멀리 상하이로 발걸음을 처음 옮긴 것은 2001년 1월이었다. 2006년 1월에도 광저우(廣州) 선전까지 9일 동안 방문하며 지금까지 최장 방중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8월에는 동북 3성만 집중적으로 돌아봤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같은 3가지 방중 패턴을 집약이라도 하듯 불과 6일 동안 동북 3성을 거쳐 상하이 인근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베이징으로 올라오는 역대 최장의 동선을 그리고 있다. 중국 언론들마저 김 위원장의 방중을 "빼곡한 스케줄"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중국의 차세대 주요 개발 거점 중 하나인 동북 3성과 지금까지 개혁ㆍ개방의 성과가 집약된 남부지역 방문은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김 위원장의 경제개발에 대한 관심 표출로 볼 수 있다. "중국의 발전 상황을 북한 발전에 활용할 기회를 주려 했다"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설명처럼 중국 지도부의 요구에 화답하는 모양새도 갖췄다.
건강 불안설을 잠재우려기 위해 굳이 이 같이 긴 동선을 계획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5박 일정 중 사흘 밤을 기차 안에서 지내는 의도된 '강행군'을 통해 자신의 건재와 북한 권력교체 과정에 불안 요소가 없다는 점을 과시하려 했을 수 있다. 북한 내부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알리려 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처음 상하이방의 대부인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고향 양저우를 방문했다는 점도 색다르다. 김 위원장은 양저우 체류 이틀 동안 외부 활동보다 영빈관에서 머문 시간이 더 길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장쩌민은 1990년대 초반 동구권이 몰락하고 소련이 붕괴할 때 김일성 주석과 만나 우애를 다진 사이"라며 "노세대를 찾아 북중 우호관계 계승을 재확인하고 이를 내부 선전에 활용하려는 목적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국가주석으로 유력한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의 동행 가능성도 높아 중국 신구세대와 동시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