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계성 칼럼] 김정일의 시들한 학습여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계성 칼럼] 김정일의 시들한 학습여행

입력
2011.05.25 12:01
0 0

중국 남북을 통크게 가로지른 김정일 위원장의 철도여행이 25일 베이징 북중 정상회담을 정점으로 마무리되는 모습이다. 최단 거리 귀로를 잡아도 총 이동거리가 5,000 ㎞를 훌쩍 넘는다. 많이 회복됐다고는 하나 성치 않은 건강으로 그 먼 여정을 강행한 데는 그럴 만한 목적과 이유가 있어야 한다.

중국 개발현장 주마간산식 시찰

원자바오 총리의 말대로라면 개혁ㆍ개방을 위한 학습여행이다. 원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과 가진 한중 정상회담 중 김 위원장의 방중 초청 목적을"중국 발전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자신들의 발전에 활용하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 동선도 이 설명에 부합한다. 창춘의 이치 자동차 공장에 이어 양저우 한장개발구의 태양광설비 공장, 중국의 삼성전자라고 할 수 있는 판다전자 등을 둘러봤다. 하나같이 중국이 자랑하는 세계적 기업들이다. 북한은 이 업종들을 나진ㆍ선봉지구에 유치하고 싶어한다는 얘기도 있다. 양저우에서 할인마트에 들른 것은 유통과 시장에 대한 관심 표명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현장 방문에서 예전처럼 감탄이나 관심을 기울이는 열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좀 이상하다. 김 위원장이 기업을 돌아보는 데 업체 당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마디로 주마간산 식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이번 중국 산업시찰이 북한에 개혁개방을 촉구하는 중국 최고지도부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모양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체면치레 여행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식량과 경제 지원, 경협 조율, 후계체제 지원 요청 등의 필요성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방중 때 이미 후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다 다뤘던 사항들이다. 그런 사안들이라면 9개월 만에 다시 중국을 방문할 이유가 있었을까 싶다. 황금평 등 압록강 하류의 합작개발, 중국의 야심적인 동북지역 발전계획인 창ㆍ지ㆍ투 개발과 연계된 나진선봉지구 개발을 본격화하기 위해 긴밀한 조율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의 목적이 무엇이든 방중 이후에 대해 큰 기대는 높지 않다. 김 위원장은 이미 여섯 번이나 중국의 천지개벽한 발전 현장을 돌아봤다. 학습은 할 만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개혁개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라고 보기 어렵다. 북한은 1980년대 중반 이후와 2000년대 초반에도 경제개혁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주체노선, 우리식사회주의의 틀 내에서 매우 제한적인 개혁에 머물렀을 뿐이다.

개혁개방의 핵심은 분권화와 시장의 확대, 물질적 인센티브제 확대다. 이는 필연적으로 김정일 체제의 근간인 수령 유일지도체제, 중앙계획경제, 집단주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불가피하게 개혁을 시도한 경우도 모기장을 튼튼히 치고 주춤거리다가 일정한 시간 이후에는 다시 문을 닫아걸고 후퇴했던 것이 그간의 상황이다.

한마디로 김 위원장은 개혁개방 이후 체제 유지에 대해 비전과 자신감이 없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 이후에도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점에서 특별한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탓이다. 김 위원장 자신이 개혁개방과 지금의 체제가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 모른다. 이번 방중 기간에 산업시찰이 주마간산 식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한다.

개혁개방 그 이후를 보장해 줘야

김 위원장이 그런 딜레마를 해결할 비전과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개혁개방의 성과를 보여주고, 촉구를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거기에 대고 아무리 개혁개방을 요구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우선 필요한 일은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도 체제가 흔들리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핵 없이 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이 있을 때라야만 움켜쥔 손에서 핵을 내놓게 할 수 있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