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수소폭발 위험을 모두 넘기고 장기 냉각체제로 들어갔다. 이제 대기 중으로 날아가는 방사능은 줄어들었고, 오염된 냉각수를 정화하고 재활용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3기의 원전과 사용후 연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방사능 유출규모에서 최악이었던 체르노빌 사고의 무릎까지 다가 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바람이 태평양으로 향해 일본 열도에 미친 피해는 적었고, 한반도에서도 방사능이 거의 잡히지 않게 되어 우리도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원전에 대해 지금까지는 제기된 적이 없었던 근본적 질문이 던져졌다. 설계를 초월하는 기상천외한 사고에 특단의 대책이 있는지, 비상발전기까지 고장 날 경우 대안은 무엇인지, 지진과 해 일에 대비한 충분한 보강이 가능한지 등의 질문에 답이 필요해진 것이다.
현재 기술의 안전에 대해 근본적 불신이 제기될 때, 과연 우리는 이를 타개하는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산업발전 역사에서 볼 때 신기술이 불러온 재앙은 높은 기준의 채택으로 해결되어 왔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미래를 본다. 한 예로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 곳곳에서 고압 보일러가 폭발해 대규모 인명피해를 일으키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한 신문은 "고압보일러의 폭발 시기는 신(神)만이 알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고 한다. 간 일본 총리도"후쿠시마 사고의 수습 시기는 신만이 안다"고 했다니, 그 때의 참담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증기기관 덕분에 수력 의존에서 벗어나 빠른 물살이 없는 곳에도 공장을 세울 수 있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기에 산업계는 복잡하고 위험해도 보일러를 포기할 순 없었다. 미국은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결성, 보일러 사고를 심층 검토한 후 안전성을 대폭 강화한 첨단기준을 제정했고, 정부는 이를 법제화했다. 그 후 서방세계의 노동자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보일러 사고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후쿠시마 사고는 예측이 어려운 천재지변에서 촉발되었지만 높은 지대에 건설된 오나가와 원전은 진앙에 더 가까웠음에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는 사실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비록 보일러보다 훨씬 복잡하고 위험한 원전이지만 현명하게 사고의 재발을 차단하는 기술적ㆍ제도적 기준을 만들어 나가는 사회가 21세기를 이끌어 나갈 것이다.
얼마 전 고리1호기가 전원차단기에 고장이 발생해 정지했고, 이어 고리 4호기에서도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이미 고리 1호기의 계속 운전 심사과정에 대해 부산지방변호사회와 여러 국회의원들이 의혹을 제기한 터라 정부는 고리1 호기의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한 뒤 가동에 들어갔다. 이번 안전진단을 통해 고리 원전은 지진과 해일 대비책을 강화하면 안전성 확보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고리 1호기의 심장인 원자로 용기도 모든 법규에 따라 철저한 시험과 진단을 거쳐 적법하게 승인된 것도 확인됐다. 고리 1호기와 동일한 설계로 제작된 미국의 여러 원전들이 이미 같은 절차를 통해 계속 운전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대규모 방사능 유출사고를 근절할 안전기준과 대책을 확립할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했다고 할 만하다. 정부와 국회,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첨단 기준과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어 나감으로써 대한민국은 원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황일순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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