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초제(除草劑)는 문자 그대로 풀을 제거하는 약품이다. 특정 품종만 죽이는 것도 있고, 모든 식물을 깡그리 없애는 것도 있다. 영양 공급을 차단하여 잎이 떨어지게 만드는 것을 낙엽제(落葉劑), 아예 줄기 뿌리까지 훼손해 잎이 모조리 말라 죽게 만드는 것을 고엽제(枯葉劑)라 한다. 제초제 가운데 가장 독한 놈이 고엽제인 셈이다. 농사를 지을 때 김매기 일손이 부족해 사용하는 제초제 차원을 넘어 밀림을 초토화시키는 화학무기로 간주된다. 미군은 베트남전(1964~1975년) 당시 180만㏊(서울시 면적의 약 30배)의 정글에 고엽제를 뿌렸다.
■ 당시 그것을 화학무기로 여기지 않았던 미군은 살포 행위를 '오렌지(orange) 작전'이라 명명했다. 약품은 무색이었지만 운반용 드럼통을 오렌지색으로 칠해 보통의 화학제품과 구별했다. 오렌지색으로 눈에 확 띄게 경고했던 이유는 고엽제에 포함된 '다이옥신(Dioxine)' 성분 때문이었다.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위험한 물질'다이옥신은 청산가리보다 1만배 이상 무서운 독극물이다. 하루 허용 섭취량이 몸무게 1㎏당 1조(兆)분의 1~4g으로 규정돼 있을 정도다. 물에 녹지 않아 일단 몸 속에 들어가면 빠짐없이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 다이옥신의 위험성이 밝혀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49년 미국에서 염소살균제 공장 폭발사고가 난 후 그 공장 근로자들이 피부질환을 앓게 되면서 유독성이 알려졌다. 1963년 제초제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났는데 인근에 있던 50여명에게서 점진적으로 심각한 건강이상이 확인됐다. 이 공장에서 생산된 고엽제가 '오렌지 작전'에 사용됐다. 1999년 벨기에선 가축사료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돼 수백만 마리의 닭과 돼지를 살처분했다. 우리나라는 2000년 모유에서 위험한 수준의 양이 검출되는 사건이 일어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 미국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9년 '다이옥신이 극미량이라도 체내에 쌓이면 각종 암과 신경마비의 위험이 있다'며 사용을 중지한다고 밝혔다. 이번 고엽제 매립 파문으로 1969년 이후 10년 동안 미군이 한반도에서 '오렌지 작전'을 유지한 사실이 밝혀졌다. 위험성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이후 10년 동안 한미 양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사실도 드러났다. 베트남전 참전 미군 가운데 고엽제 후유증으로 정부의 보상과 치료를 받은 경우가 10% 수준인 반면 우리의 파병용사는 0.01% 수준이다. 미국도 한국도 해야 할 일이 태산 같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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