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가들이 밧줄 하나에 의지해 매달려있는 것과 같다.”
한 투자가가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 퍼지고 있는 상황을 빗댄 말이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에 이어 유럽 재정위기가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까지 도미노처럼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추가 구제금융을 지원받지 못해 다급해진 그리스는 주요 국유자산매각 계획을 발표하며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까지 확산되나
유로존 선진국인 스페인과 이탈리아, 벨기에 경제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채권전략가 존 래스는 “그리스가 무너지면 스페인과 이탈리아도 함께 추락한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먼저 최고수준의 실업률과 재정난을 겪고 있는 스페인에 대한 시장의 부정적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한 채권 거래인은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스페인이 유로존과 디커플링(탈동조화)됐다는 판단은 유효하지 않다”며 “스페인 국채 매도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스페인 정부도 국가재정이 어려움에 처했음을 인정했다. 미구엘 앙헬 페르난데스 오르도네즈 스페인 중앙은행 총재는 이날 “금융조달비용이 너무 높다”며 “장기화하면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공공부문 재정적자 축소를 추진하는 집권 사회당이 지방선거에서 대패하면서 정책집행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 21일 부채수준이 높다며 신용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자마자 이날 추가 긴축과 증세방안을 서둘러 발표했다. 정부소비감축을 골자로 오는 2014년까지 350억~400억유로의 적자를 줄인다는 게 골자다.
벨기에까지 빨간 불이 켜졌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벨기에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헌법개정을 둘러싼 정치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균형예산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다른 유로존 국가보다 정치 위험도가 높다는 게 이유다.
그리스 주요 국영회사 매각안 제시
그리스 재무부는 23일 통신회사 OTE텔레콤과 국영은행 포스트뱅크, 피레우스·테살로니키 항만, 테살로니키 수도회사 등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국부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이를 통해 오는 2015년까지 500억유로를 끌어 모은다는 계획이다. 민영화는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추가 금융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게오르게 파파콘스탄티누 재무장관은 “올해 재정적자 목표치인 국민총생산(GDP)대비 7.5% 달성을 위해 60억유로 추가 긴축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 언론들은 부가가치세 추가 인상, 공공부문 정규직 인력해고를 포함한 공공부문 지출 추가삭감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스가 구체적 안을 들고나온 것은 그리스 금융개혁 실패에 대한 유로존의 비판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그리스의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국채를 취급하고 있다고 LA타임스가 보도했다. 23일 기준 2년짜리 그리스 국채금리는 25.5%에서 0.8%포인트 오른 26.3%까지 치솟았다. 이는 금융시장에서 그만큼 돈을 빌리기가 어려워 졌다는 얘기다. 이에 앞서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그리스 국가 신용등급을 무려 3단계나 낮은 B+로 강등시켰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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