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트는 일단락됐고 이제는 뇌 차례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입지가 대전으로 최종 확정된 뒤 과학계의 눈은 한국뇌연구원(가칭ㆍ뇌연구원)으로 쏠리고 있다. 뇌연구원 역시 입지가 문제다. 처음 설립 이야기가 나온 뒤 어디에 지어야 할지 2년 가량 표류하다 이제서야 본격적 입지 평가가 시작될 모양이다.
그런데 어째 불안하다. 입지 확정 이후에도 지역 반발이 가시지 않는 데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과학벨트처럼 뇌연구원도 비슷한 절차를 밟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예산 확보 위한 실체 만들기
7년간 약 5조2,000억원이 투입되는 과학벨트에 비하면 뇌연구원에 들어갈 예산은 6년간 약 1,300억원으로 훨씬 적다. 하지만 과학 분야의 마지막 블루오션으로 불리는 뇌 연구를 아우를 국가 차원의 전문 연구 기관이 처음 생긴다는 점에서 뇌과학자들의 기대는 과학벨트에 뒤지지 않는다.
따라서 뇌연구원 설립 필요성 자체에 대한 논의보다는 어디에 어떤 형태로 설립해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전문가 의견의 충분한 의견 수렴과 객관적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현재로선 뇌연구원 입지로 대구ㆍ경북 지역이 가장 유력하다. 문제는 그 이유다. 단독 후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뇌연구원 설립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주무 부처 교육과학기술부는 일정에 쫓기고 있다. 다음달 기획재정부에 2012년 예산으로 신청하려면 빨리 입지를 선정해 뇌연구원의 실체를 만들어야 한다. 공정하고 객관적 평가보다는 예산 확보를 위한 형식적 절차가 될 가능성이 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되는 2차 뇌연구촉진기본계획에 따라 뇌연구원 설립을 포함해 뇌 연구에 약 1조5,000원을 투자하겠다는 게 당초 정부 목표다. 이에 따라 2009년 적극적으로 뇌연구원 유치 의사를 밝힌 건 ▦경북도 대구시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포스텍 포항시 ▦대전시 서울아산병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SK ㈜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서울대 가천의대 길병원 등 3개 컨소시엄이었다.
그런데 그해 연말로 예정돼 있던 3개 컨소시엄에 대한 현장평가를 교과부는 돌연 연기했다. 그 뒤로 1년 넘게 뇌연구원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이를 두고 과학계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우주기술 원자력 녹색기술 등 비교적 단기간 안에 가시적 효과가 보이거나 이익을 창출하는 과학 분야에 중점을 두고 있어 뇌과학 같은 장기적 연구 분야 지원은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한편에서는 정부가 과학벨트 입지를 확정한 다음 뇌연구원 입지를 선정하기 위해 진행을 미루는 거라는 추측도 있었다. 과학벨트로 인한 지역 갈등을 뇌연구원으로 달래려는 계산일 수 있다는 것이다.
100점 만점에 70점
미적미적하던 교과부가 지난달 22일 갑자기 3개 컨소시엄에 뇌연구원 유치 공모에 참여의향을 재확인하더니, 이달 초 각 지방자치단체가 사업비 일부를 분담할 의사가 있는지를 추가로 확인 요청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만 의사를 재확인하는 답변을 교과부에 제출했다. 다른 컨소시엄의 지자체들은 정부가 과연 뇌연구원을 만들려는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고, 이미 대구로 내정됐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는 이유로 유치 포기 결정을 내린 걸로 알려졌다.
지자체가 사업비 분담이 부담스러워졌을 거라는 해석도 없지 않다. 뇌연구원 설립에 지자체가 부담해야 하는 돈은 부지 비용과 건축비 등을 합해 2013년까지 약 650억원이다. 2014년까지 설계비 운영비 연구개발(R&D)비 등 약 640억원을 투자하는 정부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렇게 해서 교과부가 구성한 뇌연구촉진심의회의 입지 평가를 단독으로 받게 된 대구 DIGIST 컨소시엄은 100점 만점에 70점 이상을 받으면 뇌연구원 유치가 곧바로 확정된다. 심의회의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단독 후보로 평가하는 것보다는 입지 후보를 재공모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지만 6월 예산 확보를 위해 그대로 진행하자는 반대가 우세했다는 후문이다. 평가는 이달 31일 서면평가와 6월 1일 현장평가 순서로 진행된다. 심의회는 위원장인 김창경 교과부 2차관을 비롯해 교과부 지식경제부 보건복지부 공무원 4명에 뇌과학 전문가 11명 등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2013년 개원 목표
대구 DGIST 컨소시엄이 제안한 뇌연구원은 DGIST의 부설 기관 형태다. 부지는 대구시 동구 첨단의료복합단지 내 5만2,000㎡, 건물 연면적은 1만9,054㎡다. 전체 인력은 약 300명이다. 2012년 말 준공해 2013년 초 개원한다는 게 대구 DGIST 컨소시엄의 목표다.
2017년까지 뇌의약학과 뇌공학 뇌인지과학 등 3대 분야의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고 국내ㆍ외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착수하는 등 연구 역량을 강화해 ?연구 7대 강국에 진입한 다음, 2020년까지 뇌과학 분야 융합 연구의 세계적 리더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대구 DGIST 컨소시엄은 또 뇌연구원이 2020년까지 대구∙경북권에 생산유발 3조9,000억원, 부가가치유발 2조7,000억원, 취업자 수 증가 3만1,000명 등의 효과를 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주탁 DGIST 기획실장은 "대구 DGIST 컨소시엄의 뇌연구원 유치가 확정되면 서울이나 대전 등 다른 지역에 많은 우수한 뇌과학자나 뇌 연구소를 유기적으로 엮는 허브 개념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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