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엔진 부품 업체 유성기업 사태는 호황을 맞고 있는 국내 자동차 업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최근 현대ㆍ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는 품질과 브랜드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공장 가동율이 100%에 육박하고 있다. 협력사도 마찬가지. 이에 완성차를 비롯한 관련 업체 노조는 노동조건 개선 등 대가를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생산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이를 들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마주하는 폭주 기관차 같은 모양새는 유성기업뿐이 아니다. 최근 현대차와 기아차 등 완성차 업체와 부품사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현상이다.
▦유성기업, 부품업계의 쌍용차 되나
실제로 유성기업 노조는 18일 파업 당시 야간근무를 수반하는 3교대제 대신 2교대제를 내걸었다. 사측은 생산량 감소가 뻔한데 이를 들어 줄 수 없다며 강경하게 나섰고 결국 직장폐쇄라는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19일 충남 아산 공장에서 사측이 고용한 용역사 직원의 교통사고도 감정 대결의 한 원인이 됐다. 이 회사 노조는 이 사고를 용역사 직원이 노조원에게 뺑소니 교통사고 낸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외부 노동 활동가 100여명도 가세했다.
▦장기화시 자동차 업계 피해 막심
문제는 파급 효과가 막대하다는 것. 이 회사는 완성차업체에게 피스톤링, 캠 샤프트, 실린더라이너 등 엔진 부품을 납품해 왔다. 해당 부품은 제작이 어렵지는 않으나 엔진 내구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유성기업은 품질에서 인정을 받아 현대ㆍ기아차와 한국지엠에 각각 전체 물량의 70%, 르노삼성의 50%, 쌍용차의 20% 완성차에 부품을 공급해 왔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완성차 업체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특히 글로벌 업계에서 두각을 보이던 현대ㆍ기아차의 경우 내수는 물론 해외 수출까지 대규모 피해가 예상된다. 유성기업의 피스톤링은 세타엔진, 누우엔진, 람다엔진, R엔진 등을 장착한 현대ㆍ기아차의 차종 70%에 장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공장에서 생산, 수출하는 K5, 제네시스, 쏘나타 하이브리드 등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업계에서는 연말까지 장기화될 경우, 50만~70만대 수출 차질을 예상하고 있다.
재고분은 빠르면 일주일 뒤, 길어야 이번 달 말이면 바닥이 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책은 사실상 없다. 공급선을 국내 다른 부품사로 옮기려 해도 해당 회사의 생산 능력이 이미 거의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또 해외 공급선을 찾기 위해서도 적어도 수개월간 조사와 협상이 필요하다.
한국지엠도 마찬가지. 부평, 군산 공장에서 엔진 70% 가량에 유성기업의 피스톤링이 들어가지만 재고 여력이 일주일 분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르노삼성도 대표차종인 SM5에 유성기업의 캠 샤프트를 쓰고 있는데 재고분이 4일 밖에 되지 않는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애프터서비용 부품까지 생산쪽으로 돌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지만 임기 응변 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부품사 해외 러브콜 중단 위기
일본 대지진으로 반사 이익을 기대하던 부품 업계도 피해가 불가피하다. 최근 미국과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일본 부품사 대신 품질이 뒤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가격경쟁력이 있는 국내 부품사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불안한 노사관계는 완성차 업체로서는 반드시 피해야 하는 위험요인. 따라서 이번 유성기업 사태는 자칫 전체 부품사의 매력을 떨어뜨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자동차 업계가 아직 과실 배분을 논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노조의 주장대로 2교대를 도입하자면 생산성을 높이거나 임금 감소를 감내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한국 자동차 업계가 모처럼 맞은 기회를 상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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