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전관예우 금지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의 요지는 방금 퇴임하는 법관, 즉 전관들이 퇴임 직전에 근무하던 지역에서 사건 수임을 일정 기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규제의 이유는 바로 퇴임한 전관들이 변호하는 사건 중 많은 경우 법원의 판결이 전관들에게 유리하게 이루어져 공정성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전관 의식하는 현직이 더 문제
이러한 법이 제정되었다는 사실은 참 슬픈 일이다. 전관예우 금지법이 제정되었다는 것은 현재 법원의 판결에 미치는 전관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는 공정한 법 집행을 하려는 법관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명예의 훼손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조에서 이러한 모욕적인 규제 도입에 대해 전관예우가 사실이 아니라는 부정의 소리조차 크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 법이 통과되기 전에 퇴임을 하여 규제를 피하려는 움직임과 이를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법관들의 퇴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는 보도는 정말 참담하다는 생각조차 들게 한다.
전관예우 관행의 근원을 들여다보면 이는 주로 현재 재판을 맡고 있는 법관들의 책임이다. 사람들이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경우 당사자는 당연히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받기 바라고 그를 변호하는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따라서 변호사들은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려 할 것이고 전관들의 이러한 시도가 효과가 있다면 의뢰인들은 전관인 변호사를 고용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사건의 재판을 맡고 있는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을 해야지 전관이 변호하는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판결을 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전관예우 관행의 배경을 살펴본다면 법관들이 왜 그런 관행을 따르는지를 이해 못할 바도 없다. 전관예우 관행은 법관 사회 전체가 자신과의 집단적이고 암묵적인 약속의 사슬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현재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법관들은 전관들의 영향을 받아들이면 장래에 자신이 전관이 되었을 때 후배 법관들로부터 동일한 예우를 받기로 암묵적인 약속이 되어 있다고 믿어 전관을 예우하고 장래의 후배 법관들은 또다시 같은 암묵적 약속을 믿고 전관을 예우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법관이 이런 관행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집단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그 사회에서 외톨이가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이로 인한 심적 부담감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는 의무감보다 더 클 수 있다. 전관예우 관행을 따르는 것이 명백히 법에 어긋나는 판결을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굳이 이를 거부하고 외톨이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될 것이다. 더군다나 그 관행을 따르면 자신도 풍요로운 노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전관예우 관행을 법관들 사이의 집단적이고 암묵적인 약속으로 인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전관들이 사건 수임을 일정 기간 못하게 하는 방법은 전관예우에 대한 효과적인 방지책이 아닐 수 있다. 전관예우라는 암묵적 약속은 전관이 관련이 되어 있는 사건에서 전관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주면 지켜지는 것이므로 굳이 사건 수임을 했을 경우에만 해당이 될 필요는 없다. 즉 전관이 사건을 수임하지는 않더라도 사건에 대한 조언을 하고 있고 그로 인해 보수를 받는다는 것을 현재의 법관에게 밝힌다면 충분히 전관예우 관행이 살아날 수 있다.
변호사 중에서 법관을 뽑자
그러나 만일 장래에 자신이 전관예우를 받을 가능성이 없다면 이러한 암묵적인 약속은 의미가 없어지고 현재의 법관들은 전관을 예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관찰은 전관예우 관행을 고치는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전관예우 관행에는 현재의 법관 인사제도가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현재의 법관들이 앞으로 변호사가 되지 않는다면 전관예우라는 암묵적인 약속은 지킬 필요가 없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법관 직을 마치고 변호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 중에서 법관을 뽑는 것이 전관예우 관행을 고치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