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3일 기업은행의 개인고객이 1,000만명을 돌파했다. 당초 목표였던 창립기념일(8월1일)보다 2개월 이상 앞당겨진 기록. 50년 기업은행 역사에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19일 오후 본점 집무실에서 만난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날이었다"며 "믿고 따라와 준 직원들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그런데 중소기업 금융을 책임지는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에게 '개인고객 1,000만명'은 과연 어떤 의미인 걸까. 본연의 임무보다 일반 시중은행과의 경쟁에 치중하겠다는 건 아닐까.
조 행장의 설명은 명쾌했다. "고객 1,000만명은 앞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젖줄이자 동맥이 될 겁니다. 양질의 자금으로 중소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주겠다는 거죠."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더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개인 고객이라는 안정적 자금 공급원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최근 조 행장이 차를 타고 가다가 문득 떠올린 광고 문구가 '기업은행에 예금하면 기업을 살립니다'는 것. 그의 아이디어는 조만간 실제 광고로 선보일 예정이다.
조 행장이 특히 뿌듯해 하는 것은 취임 이후 성과 위주의 각종 캠페인과 프로모션을 없앴는데도, 직원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1,000만명 고객 확보 목표를 조기에 달성했다는 점. 그는 "직원들이 스스로 유치원이나, 학교, 군대 등을 찾아 다니면서 얻어낸 결과"라며 "단순히 수치 목표를 채우기 위한 허수가 아니다"고 자신했다.
물론 대규모 지각 변동이 예상되는 금융권 환경은 기업은행에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금융권이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하는 종합금융그룹 체제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고, 금융회사간 대형 인수ㆍ합병(M&A)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기업은행의 지주회사 전환이나 민영화는 아직 요원한 상황이므로, 자칫 다시'마이너 은행'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도 없지 않을 터.
하지만 조 행장은 '체격이 문제가 아니라, 체력이 중요하다'고 단언한다. "우리 자산이 50조, 60조원 정도면 모를까 180조원에 달합니다. 이 정도면 큰 덩치의 금융회사와도 겨뤄볼 규모는 되죠. 대한민국 우량 중소기업과 40, 50년간 깊은 신뢰 관계를 맺어온 우리가 단순히 덩치 때문에 고객을 빼앗기지는 않을 겁니다."그래서 기업은행이 최근 내세운 슬로건도 '참 좋은 은행'이다.
조 행장이 취임 이후 가장 깊이 고민하는 대목은 미래 먹거리다. 본인 임기(3년) 내에는 구체적인 성과물을 내지 못하더라도 향후 기업은행이 먹고 살 수 있는 초석을 닦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이 문화 콘텐츠 산업 육성. 조 행장은 "금융인으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문화 콘텐츠 산업을 육성해야 하며, 오직 기업은행만이 할 수 있다고 본다"며 "임기 중 성과를 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10년, 20년을 내다보고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취임 후'기업은행의 태종 이방원이 되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취지였다.
중소기업을 책임지는 은행장이기 때문일까. 조 행장은 요즘 한국 사회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 '동반성장'을 두고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그는 "얼마 전 '대기업 총수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며 "돈을 많이 벌면 좋은 기업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위대한 기업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물론 여기엔 기업은행이 기여할 바도 적지 않다. 조 행장은 "기업은행도 대기업과 공동으로 상생펀드를 조성해 중소기업 자금애로 해소를 지원하고, 중소기업중앙회 등과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등 동반성장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며 "그게 중소기업 지킴이의 사명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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