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국가 간 전쟁과 이데올로기와 대결하는 것이 20세기 문학의 큰 흐름이었다면 21세기 문학을 둘러싼 환경은 판이하다. 무기 대신 상품이 국가의 전선을 쉽사리 넘어 버리고, 경제적 실리가 이데올로기를 대체해 버린 상황. 세계 문학의 거장들이 서울에 모여 문학의 좌표가 흐릿해진 세계화 시대에서 글쓰기 방향을 모색하는 세계적 문학 담론의 향연을 벌인다.
대산문화재단이 24~26일 서울 세종로 교보컨벤션홀에서 여는 서울국제문학포럼에는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 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중국 출신의 가오싱젠(高行健), 전 영국 계관시인이자 부커상 심사위원장 앤드루 모션, 아프리카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히는 벤 오크리, 프랑스의 지성 앙투완 콩파뇽, 통독 이후 동독 3세대를 대표하는 잉고 슐체 등 저명한 해외 문인 14명이 참석한다. 한국에서도 김우창 유종호 박범신 이문열 김성곤 이인성 구효서 정과리 공지영 은희경씨 등 평론가 및 작가 32명이 발제자 및 질의자 등으로 참여해 토론을 벌인다.
2000년과 2005년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리는 이번 포럼의 대주제는 ‘세계화 속의 삶과 글쓰기’. 미리 공개된 발제문에서 문학의 거장들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21세기 글쓰기의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한다.
24일 개막일 기조강연을 맡은 클레지오는 집안 고향인 프랑스 식민지 모리셔스섬 주민들의 경험을 예로 들며 획일적 문화제국주의를 극복해 나가야한다고 강조한다. 모리셔스섬은 식민 지배와 노예노동이란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도 그들만의 저항과 회복력으로 다채로운 문화를 만들었는데 예컨대 주민들은 매일 세 개의 언어를 말하고,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모두에 익숙하며, 이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화 시대 대중문화가 획일화와 체제 순응주의를 대변하고 있다”며 신속한 비즈니스와 정보의 교환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적 제국주의의 위험을 지적한다. 그는 “그 해독제로서 예술과 문학을 신뢰해 왔다”며 “정체성 상실과 획일적 문화 심령체의 모든 활동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강조한다.
기조강연에 이어 ‘다문화 시대의 자아와 타자’ ‘문학과 세계화’라는 세션이 마련돼 세계화 시대 개인의 정체성과 글쓰기의 역할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 이어진다. 대중 영상 문화의 범람 속에서 문학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 원로 평론가 유종호씨는 “아예 10년 정도 문학 생산을 중단해 보자”는 흥미로운 제안도 한다. 문학의 위엄과 고전의 풍요함을 역으로 되새겨 볼 기회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소설가 이인성씨는 동화‘잠 자는 숲 속의 공주’에 비유해 문학이 영화 요정의 저주를 받아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 극히 비관적으로 진단하며 “문학을 깨우는 이는 먼 미래의 새로운 시대에 등장할 새로운 독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탈이데올로기 시대에서 다시 이데올로기와 문학의 관계를 돌아보는 자리도 흥미롭다. 25일 ‘이데올로기와 문학’이란 세션에서 동독 출신의 슐체는“독일에서 현 상태를 비판하는 사람이 동독 출신이면 그는 동독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데 그런 사고가 이데올로기다”며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모든 생활 분야가 경제화한 오늘날의 이데올로기는 현 상태가 이미 확고부동하게 보이도록 하는데 있다”며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 문학”이라고 강조한다. 오크리도 “사회는 대립되는 여러 이데올로기의 전장”이라며 “문학은 이데올로기와 인간의 본성, 이데올로기와 자유 간의 끝없는 대화”라고 설명한다. 한국에선 이데올로기 논쟁의 대표적 문인인 이문열씨가 참여해 “반(反)이데올로기의 논리를 키워 가던 나는 탈이데올로기에서 나아가 무이데올로기에 이르게 됐는데 그 자체도 하나의 이데올로기였다”고 고백하며 “그 빈 자리에 문학이 채워져, 문학이 나의 이데올로기가 됐다”고 말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에서 글쓰기의 미래에 대해서는 우려와 긍정적 시각이 교차한다. 일본 출신의 소설가 다와다 요코(多和田葉子)는 “인터넷 정보를 무조건적으로 믿는 오늘날의 세태가 매우 염려스럽다”며 “활자화한 교과서 및 수험서 또한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프랑스 비평가 콩파뇽은 “하이퍼 텍스트를 통해 독서는 더 시각이미지화할 것이고 상상력은 감소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그러나 매체적 오염성이야말로 소설 고유의 특징으로 라블레 도스토예프스키도 오늘날 같으면 인터넷을 쓰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포럼의 조직위원장인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26일 기조강연에서 “원칙 없고 지향이 분명치 않은 세계화의 과정이 많은 문제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며 “이로 인해 단단한 윤리적 사고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신적 파토스가 더욱 절실해졌다”고 강조한다.
이를 포함해서 포럼은 3일 동안 모두 5개의 세션에서 31명의 국내ㆍ외 작가들이 주제문을 발표한다. 이번에 방한한 해외 작가들은 포럼과 별도로 강연회 작품낭독회 사인회 등 작가별로 다양한 행사를 갖는다. 홈페이지(www.seoulforum.org/2011) 참조.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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