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해묵은 갈등은 이념 계층 세대 지역 성별, 이 다섯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 중 성별갈등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거나 다른 것들에 비해 해법을 찾기가 오히려 그다지 어렵지 않은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나머지 네 가지는 갈등이 아니라 아예 단절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확해 보일 만큼 얽히고설킨 분열과 혼란의 양상이 심하다. 남북으로 갈라진 나라를 이런 단절과 갈등이 더 작고 잘게 갈라놓고 있다.
저마다 화가 잔뜩 나 있는 국민
긴 가뭄을 만난 논바닥처럼 갈라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감정은 분노라고 생각된다. 많은 국민들이 무슨 이유에서든, 자신을 향해서든 남들에 대해서든 깊이 분노하고 있다. 국민정서가 건강하지 못하다. 특히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는 해소되지 않는 분노가 들끓는다.
아무리 해도 나아지지 않는 생활, 가뭇없는 취업의 길, 보이지 않는 사다리. 그런데 별로 하는 일도 없어 보이는 기성세대는 기득권+전관 예우로 온갖 혜택을 누리며 수억 대 연봉에 흥청망청, 腹高如山(복고여산)의 거드름과 교만을 부리고 있으니 그들의 마음에 분노가 쌓이지 않을 수 없다.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는 전승과 승계의 건전한 관계 속에서 세대교체를 이루는 게 마땅하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낡은 세대가 부정한 방법으로 자리만 차지한 채 자신들의 몫을 빼앗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공정한 사회'를 내세운 뒤부터 공정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가 커졌다. 가진 자들의 몰염치와 방탕, 공적 감시기구의 부도덕과 타락, 공직자들의 후안무치가 두드러지는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국민 전체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또 자신들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분노를 정당한 것으로 포장하기 위해 '공정한 사회'를 차용하는 현상까지 생겼다.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에 대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이라고 말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대해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분노'라는 말이 가능할 것 같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나 과학비즈니스벨트 같은 국책사업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 대표적이다.
나나 우리가 아닌, 너나 남들에게 이익과 혜택을 빼앗기는 것을 참지 못한다. 행사장에서 나눠주는 선물이 모자라면 사람들은 집단으로 항의한다. 공짜로 주니 고맙다고 생각하기보다 남들은 다 받았는데 왜 하필 내 앞에서 물건이 떨어지느냐고 따진다. 정당한 분노와 정의감은 사회 발전과 개량의 에너지가 되지만 이기적 분노는 사회 분열과 지체를 유발하는 해악으로 작용한다.
요즘 '종결자'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웰빙 종결자' '간염 종결자' 이런 식인데, 광고와 달리 우리 사회의 현안에는 올바른 종결자가 없다. 무정부상태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레임덕이란 모든 걸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것이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한 사람(김형오 전 국회의장)도 있지만, 경위야 어찌됐든 많은 부분이 정부와, 정부를 이끄는 고위 공직자들의 잘못이다.
가장 궁극적인 잘못은 이명박 정부의 공정하지 못한 인사다.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을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혀 공정하지 못한 인사의 부작용이 사회 각계로 파급된다. 그런 터에 과학비즈벨트처럼 행정 처리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자초하는 일을 더하니 민심을 얻기 어렵다.
대통령부터 더 깊이 달라져야
이명박 대통령이 5ㆍ18기념사를 통해 '더 깊은 민주화'론을 펼쳤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견해와 이익을 일방적으로 주장함으로써 극한 대립과 투쟁으로 나아가지 말고 사회통합을 이루자는 취지다. 당연하고 옳은 말이지만, 정당한 것이든 정당하지 못한 것이든 국민들의 분노감정을 풀어 주려면 대통령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 분노가 단시일에 쌓인 게 아니므로 푸는 일도 단시일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러니까 더 깊이 달라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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