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부실 저축은행에 한국 사회의 온갖 부조리가 집약됐다는 사실이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부도덕한 대주주와 이들을 비호한 감독기관의 행태에 이어, 증권가에서 악명 높은 기업 사냥꾼도 활개를 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검찰과 금융권에 따르면 본명 대신 이철수 혹은 이성민이라는 가명으로 통하는 기업사냥꾼이 올해 초 영업정지된 삼화저축은행과 보해저축은행을 수 년간 사금고로 이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삼화저축은행의 경우 실질적 대주주로 회사 자금을 주물렀고, 보해저축은행에서도 수백억원을 불법 대출 받았다.
삼화ㆍ보해는 이철수의 사금고
올해 3월 삼화저축은행 대주주에 대한 수사를 벌이던 검찰은 의외의 인물이 튀어 나와 깜짝 놀랐다. 당초 이 회사의 대주주로 알려진 심삼길씨의 거래 내역을 뒤지던 중 2009년 상당수 지분이 이철수라는 인물에게 넘어갔는데, 그는 2개의 우량 중견 상장기업을 인수한 뒤 돈을 빼먹고 달아나 수배 중인 사람과 동일인이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이철수라는 인물은 대주주가 된 이후 삼화저축은행 자금을 자신의 기업 사냥 작전에 투입했다. 2009년 11월 그가 사들인 씨모텍의 전환사채(CB)에 삼화저축은행이 75억원을 투자하도록 했으며, 이듬해 4월에 또다시 60억원을 투자하게 했다.
지난해에는 아예 삼화저축은행을 헐값에 통째로 인수하려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부실 누적으로 금융 당국이 삼화저축은행 매각 방침을 세운 것을 알아내고는, 자신이 통제하는 또다른 회사인 제이콤을 통해 인수ㆍ합병(M&A)을 시도한 것. 제이콤이 장부상 245억원을 보유한 것처럼 꾸미고 그에 55억원을 더해 300억원에 인수하려는 모양새를 취했다. 금융 당국이 잔고증명을 요구할 경우에 대비해서는 JJ인베스트에 CB를 발행해 350억원을 조달했다. JJ인베스트는 최근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들어간 '카자흐스탄 구리왕' 차용규씨가 투자한 바로 그 회사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재무구조가 불투명한 코스닥 기업(제이콤)에 넘기는 대신 올해 1월16일 삼화저축은행을 영업정지 시켰고, JJ인베스트는 그 직후 바로 CB 투자금을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철수씨는 보해저축은행에서도 수백억원의 불법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두 개 부실 저축은행이 몰락 직전에는 기업사냥꾼의 사금고까지 전락했던 것이다.
유망 벤처기업의 비극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기 이전에도 이철수씨는 자본시장에서 악명이 높았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유망한 회사를 인수한 뒤, 회사 자금을 빼가는 수법에 피해를 본 기업은 2개, 그 규모는 600억원에 육박한다.
검찰과 금융당국 조사에 따르면 이씨의 제물이 된 기업은 씨모텍과 제이콤이다. 씨모텍은 'T로그인'과 와이브로 단말기를 제작하던 성장성 높은 기업이었고, 제이콤도 2009년 이씨가 인수하기 전에는 245억원의 현금을 보유할 정도로 탄탄했다. 그러나 불과 2년간 이씨에게 유동성을 털리면서 제이콤은 지난달 16일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됐으며, 씨모텍도 올 3월 대표이사가 자살한 데 이어 상장 폐지 위기에 몰려있다.
이씨가 무일푼으로 두 회사를 인수한 수법은 이렇다. 이씨는 역시 수배 중인 김창민씨와 함께 자본금 5,000만원으로 2009년 7월 '나무이쿼티'라는 회사를 만든 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은 다스 회장의 사위 전종화(45)씨를 대표로 영입했다. 또 그해 10월 씨모텍 지분 10.1%를 300억원에 인수하고, 2010년 4월 제이콤을 230억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나무이쿼티의 씨모텍 인수 자금을 나중에 인수한 제이콤 보유자금을 털어 충당하는 등의 방식을 동원, 기업 인수과정에 이들이 부담한 돈은 전혀 없었다.
검찰은 이씨와 동업자인 김씨를 씨모텍과 제이콤의 공금 256억원과 28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쫓고 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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