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군이 1978년 한국의 미군기지 땅에 고엽제로 쓰이는 대량의 독성물질을 파묻었다는 증언이 미국 언론에 소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애리조나 주 피닉스 소재 KPHO-TV는 16일(현지시간) 방송에서 경북 칠곡군 왜관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서 근무했던 주한미군 세 명이 "독성물질을 한국 땅에 묻었다"고 증언한 내용을 보도했다.
이 방송 웹사이트에 따르면 캠프 캐럴에서 중장비 기사로 복무했던 스티브 하우스씨는 "1978년 어느 날 도시 한 블록 규모의 땅을 파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그냥 처리할 게 있다면서 도랑을 파라고 했지만 파묻은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매립 물체는 밝은 노란색이거나 밝은 오렌지색 글씨가 적힌 55갤런(200ℓ)짜리 드럼통이었고, 일부 드럼통에 '베트남 지역 컴파운드 오렌지'라고 적혀 있었다고 증언했다. 통 안의 물질은 '에이전트 오렌지'로 미군이 베트남전에서 가장 많이 사용했던 고엽제다. 하우스씨와 당시 함께 복무했던 로버트 트라비스씨는 "창고에 250개의 드럼통(총 50톤)이 있었으며, 이 드럼통을 일일이 손으로 밀고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1960년 5월 3.2㎢ 규모로 조성된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는 2008년에 3,85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KPHO-TV는 피터 폭스 애리조나주립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당시 매립됐던 화학물질로 인한 지하수 오염 가능성이 있고, 오염된 지하수를 관개에 이용했다면 오염물질이 음식재료에까지 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파장이 커지자 환경부는 19일 열리는 SOFA(한미 주둔군지위협정) 환경분과위원회에서 미군 측에 사실 확인을 요구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SOFA 환경분과위에서 주한 미군의 증언과 관련해 사실 확인을 촉구했으며, 향후 분과위 정식 안건 상정을 통해 미군기지 내부 공동 조사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20일 현지 답사와 전문가 회의를 통해 조사방법과 범위 등을 정한 뒤 캠프 캐럴 주변의 환경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이에 대해 주한 미8군사령부는 "관련 기록을 검토 중이며, 추가조사가 필요하면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프 부치카우스키 주한 미8군 공보관(중령)은 이날 이메일을 통해 "제기된 의혹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기존 데이터와 기록 등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환경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며 "건강과 환경에 위험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해 어떤 사후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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