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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창간 57주년 기획 ‘그린란드 종단 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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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창간 57주년 기획 ‘그린란드 종단 대장정’

입력
2011.05.19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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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하 위에서 얻은 어린 새 생명 "탐험 성공을 비는 하늘의 선물"

모든 훈련은 실전처럼.

17일(현지 시간) 홍성택그린란드탐험대의 베이스캠프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이날은 빙하 위로 1박 야영 훈련을 떠나는 날. 개썰매에 야영 장비를 싣고 대원 4명과 기자 2명이 함께 떠났다. 베이스캠프에서 야영 예정지까지는 30여km. 중간 높은 언덕도 치고 올라야 한다. 썰매견이 힘들면 대원들이 대신 짐을 짊어지고 올라야 하는 난코스다.

새로 만든 홍 대장의 개썰매도 이날 처음 훈련에 투입됐다. 새 개썰매에 새 하네스(몸을 고정시키는 도구)를 보자 썰매견들도 신나는 듯 겅중겅중 뛰며 빨리 출발하기만을 기다렸다. 15마리의 썰매견이 내달렸고, 그 옆으로 안나란 이름의 만삭의 개가 따라왔다. 지난 겨울 홍 대장이 사전 답사할 때 구해 놓은 썰매견인데 다시 돌아와 보니 임신 중이라 아쉽지만 이번 탐험에선 제외시킨 개다. 그런데 훈련 때마다 동료들을 따라와 부러 내쫓지 않았다.

5시간 가량 먼 길을 달려 빙하가 내려다보이는 눈 언덕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썰매견들을 서로 싸우지 않도록 분산해 목줄을 걸어 놓고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는데 따라왔던 안나가 바위 옆에 웅크려선 끙끙거리는 게 이상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새끼를 낳고 있었다. 안나는 밤새 신음을 해 가며 2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홍 대장을 비롯 대원들은 모두 경사라 여겼다. 탐험 준비 과정에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그 모든 것을 털어 내는 선물이라 생각했다. 홍 대장은 갓 태어난 강아지를 볼에 비벼 가며“그린란드 종단의 성공을 위해 하늘이 내려 준 선물”이라고 좋아했다.

탐험대가 그린란드 일루리삿의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건 11일. 홍 대장은 짐을 풀자마자 바로 자신의 썰매견들을 만나러 갔다. 이번 탐험의 성패를 쥐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지난 겨울 사전 답사때 마련해 놓은 개들은 모두 20마리. 그때 개썰매를 배우며 친해졌는데 모두 잘 있는지, 지금껏 자신을 기억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20마리 중 2마리가 도망을 갔고, 암컷 2마리는 임신을 한 데다 또 다른 2마리는 다리를 다쳐 쩔뚝거린다고 했다. 탐험이 순탄치 않을 것 같다.

다음 날은 장비를 점검하고 베이스캠프를 정리하기로 했다. 홍 대장은 아침 일찍 자신이 맞춰 놓은 개썰매를 보러갔다. 보통 개썰매보다 폭도 넓고 길이도 길다. 그린란드 전통 방식대로 만들어진 썰매를 매듭 하나하나 매만지며 점검한 홍 대장은 잘 만들어졌다며 흐뭇해 했다. 개썰매의 마무리할 것들을 일러 주고 온 홍 대장은 대원들에게 예정에 없던 오후 개썰매 훈련을 명령했다. 개썰매는 하나 빌린 뒤 엉겨 붙어 싸움만 하려는 개들을 다그치며 개들 하나하나에 하네스를 채우고 연결하는 데만 한 시간 걸렸다. 그동안 개를 맡아 키워준 앙아유(21)가 도와줘 그나마 다행이었다. 앙아유와 대원까지 6명이 탄 썰매가 드디어 출발했다. 개들은 기다렸다는 듯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5시간에 걸쳐 20km 가량 떨어진 빙하 인근까지 달렸다. 대원들은 그린란드의 추위와 칼바람, 덜컹이는 개썰매의 진동 등에 잔뜩 놀랐다.

13일 홍 대장은 앙아유의 도움 없이 혼자서 개썰매를 준비해 탐험대 훈련을 나섰다. 어차피 실전은 우리끼리다. 겨우 하네스만 채웠을 뿐인데 진이 빠졌다. 그런데 14마리 개에서 연결된 줄을 한데 모아 썰매에 매달기 직전 사고가 터졌다. 다른 대원이 뭐라 큰 소리를 치자 썰매견들이 내달린 것. 일부는 도망가고 나머지는 대원을 질질 끌고 갔다. 홍 대장이 겨우 수습했고 개들도 나중에 돌아왔지만 홍 대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개에게 명령은 나 혼자만 해야 한다. 주인이 아닌 이들이 뭐라 하면 개들이 혼란을 일으킨다. 명심해 달라.”분위기는 금세 싸늘해졌다. 적은 수의 썰매견이라 예정 코스의 4분의 1만 돌고 왔다. 홍 대장의 이마엔 전날 보다 더 많은 땀방울이 맺혔다.

14일에 이어진 개썰매 훈련에서도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이날도 개가 말썽이었다. 목적지를 찍고 돌아오는 길, 급경사의 내리막 길에서 겨우 내려와선 대원들이 잠깐 썰매에서 떨어져 있는 사이 홍 대장이 잠깐 발을 삐끗해 넘어지며 채찍을 잘못 휘둘렀다. 순간 개들이 내달렸고 썰매까지 달고 가 버렸다. 대원들만 남은 상황이다. 베이스캠프까지 10km 가량 걸으면서 연습이니 망정이지 실제 탐험에서 개들을 놓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다행히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개들이 돌아와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해발 2,000m급 설원에서 끌고 갈 개들도, 가져 간 모든 장비도 없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걱정이 또 하나 늘었다.

차츰 훈련이 더해질수록 서로 익숙해지고 있지만 실제 탐험이 벌어질 극한의 상황에서 썰매견들이 또 어떤 예기치 않은 사고를 불러올지 걱정이 앞선다. 23일로 예정된 탐험 출발이 코앞이다. 홍 대장은 이 모든 난관을 이겨낼 수 있을까. 반드시 그린란드를 종단해 한국 탐험계에 새 역사를 쓰겠다는 홍 대장은 “빙하 위 훈련장에서 얻은 새 생명의 썰매견이 분명 희망을 전해줄 것이다”고 했다.

일루리삿(그린란드)=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야만스러워 보이는 바다표범 고래 사냥…

춥다. 추워도 보통 추운 곳이 아니다. 북극과 가장 가까운 땅, 그린란드. 1년에 서너 달은 아예 태양이 뜨지 않는 동토다. 백야의 여름에 기온은 잠시 오르지만 나무 한 그루 뿌리를 내릴 만큼의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곳에 사람이 살았다. 4,000년 전부터 생을 이어 왔다. 내륙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얼음덩어리라 바닷가에 터를 마련해 살아 왔다.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사냥이다. 땅에서 어슬렁거리는 사향소 카리부(순록) 북극곰도 훌륭한 사냥감이지만 주로 거둬들이는 건 바다 것들이다. 그 중 지독한 추위를 견디는 데 절실한 지방을 채워 줄 바다표범 바다코끼리 고래 등은 그들에겐 생명과 같은 양식이었다. 4,000년 이상 이 척박한 땅에 인간이 살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연결 고리다. 바다표범이나 고래는 채소를 먹지 못하는 이누이트들에게 생을 버틸 비타민의 공급처이기도 했다. 식습관이 문명화한 지금도 바다표범과 고래는 그들에게 중요한 먹을 거리다. 혹한을 견뎌 온 그린란드 이누이트들의 역사적, 정신적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사냥은 생존의 문제였다. 현지인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나 다른 가족들로부터 사냥을 배운다. 지금도 취학 전 아이들까지 사냥을 해 오곤 한다. 아이가 처음 사냥에 성공한 날 가족과 친지는 한데 모여 생일 잔치 이상의 파티를 열어 준다. 마을의 슈퍼 과자 진열대 옆에는 사냥총들이 걸려 있다. 그리란드에선 10대들도 쉽게 총을 살 수 있다.

홍성택그린란드탐험대는 일요일인 15일(현지 시간) 배를 얻어 타고 바다로 나갔다. 빙산이 가득 떠 있는 얼음 바다를 헤치고 나간 이유는 바다표범 사냥이다. 빙원 위에서의 오랜 탐험 기간 썰매견들에게 먹일 고영양가의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홍 대장은 “모처럼 내 새끼들 배불려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출발 전부터 뿌듯해 했다.

하지만 3, 4시간 빙산의 바다를 헤집고 다녀도 바다표범 한 마리를 만나지 못했다. 선장인 피터(56)는 “요즘은 바다표범이 물속에서 잘 나오지 않는 시기”라고 했다.

총 한번 겨누지 못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항구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오른쪽 빙산 위로 갈매기 떼가 모여 있어 쳐다보니 현지인 한 명이 둥글고 널찍한 해빙 위에서 무언가 바다 생물을 해체하고 있었다. 피터는 뱃머리를 돌렸다. 그곳의 선연한 핏빛이 가까워질수록 심박 수가 빨라졌다.

순박한 미소를 지닌 현지인 한센(48)은 순순히 자신의 얼음 위 도살장에 내리는 것을 허락했다. 방금 전 죽음을 맞은 건 보통 것보다 서너 배 큰 수컷의 바다표범이었다. 거의 바다코끼리 크기였다. 해체가 거의 끝난 상태다. 커다란 살코기 다섯 덩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심장도 따로 떼어져 있었다. 머리와 거죽만 남은 바다표범 바로 옆에선 간과 창자 등 나머지 내장이 한데 뭉쳐 있었다. 하얀 얼음 위에 늘어 놓은 핏빛 살덩이와 내장에선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바다표범의 머리를 보니 총알은 정확히 정수리를 뚫고 들어와 코를 관통했다. 단 한 방이다. 살코기만 가져다 팔면 2,000크로네(약 40만원)는 받을 수 있을 거란 그에게 썰매견에게 주려는데 남는 고깃덩이를 얻어 가도 되겠냐 하자 흔쾌히 그러라 했다. 지방과 거죽 등을 한 무더기 비닐봉지에 담아 배에 올랐다. 사냥은 실패했지만 좋아라 할 썰매견 생각에 홍 대장의 얼굴엔 다시 미소가 찾아왔다. `

뒤돌아 멀어져 가는 얼음 위의 바다표범 해체 현장을 바라봤다. 한센이 필요 없는 살점을 조금씩 떼서 멀리 던져 주니 주위 빙산에 앉아 있던 갈매기들이 떼로 날아 춤을 추어 댄다. 순백의 빙산 위, 붉은 죽음의 흔적 위에서 또 다른 순백들이 날갯짓을 해 댄다. 몽환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생과 사의 현장이 또 있단 말인가.

일루리삿(그리란드)=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늑대와 개의 중간, 그린란드 썰매견

썰매견은 ‘컹컹~’ 짖기보다는 ‘우우~’울부짖는다. 우리네 개들과 늑대의 중간쯤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썰매견의 생김새는 시베리안허스키나 말라뮤트와 비슷하지만 엄연히 독립된 종으로 정식 명칭은 그린란드견이다.

야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썰매견을 길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썰매를 함께 끄는 협동은 엄격한 서열에서 나온다. 그 서열에는 인간도 포함된다. 주인의 채찍 소리가 약해졌거나 움직임이 둔해져도 개들은 금새 알아채고 배반을 모색한다. 주인은 통제를 위해 개들에게 무자비한 채찍을 가해야 한다.

홍성택 그린란드탐험대장은 이번 도전을 위해 썰매견 20마리를 샀다. 썰매견을 살 때는 한 가족을 사는 것이 원칙이다. 서열이 정해져 있어 개들 간의 잦은 싸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주인을 맞은 개들은 덤벼들기 마련이다. 대드는 개는 다른 개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총으로 쏴 죽이든지, 거의 죽을 만큼 때려야 한다. 첫 대면에서 홍 대장은 개 한 마리에게 팔뚝을 물렸다. 그는 들은 대로 그 놈을 정말 개 패듯 때렸다. 이후 모든 개들이 꼬리를 내렸다.

썰매견들이 묶여 있는 일루리삿의 언덕. 홍 대장의 발소리가 들리자 누워 있던 베링이 제일 먼저 고개를 쳐든다. 베링은 개들 중 리더다. 홍 대장은 무리 중 가장 먼저 베링의 목줄을 풀어 준다. 홍 대장이 다음 탐험의 목적지로 삼은 베링해에서 이름을 땄다. 리더 개는 썰매부대장. 다른 개들을 하네스로 갈아 끼울 때도 계속 묶여 있는 것과 리더 개는 풀어 놓는다. 그러면 리더 개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무리들을 다그친다. 썰매를 끌 때도 가운데 맨 앞에서 다른 개들을 이끈다. 하네스를 갈아 끼우거나 먹이를 줄 때도 정해진 순서가 있다. 이 순서가 흔들리면 개들은 혼란스런 서열을 다시 정하기 위해 바로 악다구니 싸움을 벌인다. 홍 대장 썰매견의 서열 2위는 유레카다. 깨달음, 또는 발견을 뜻하는 홍 대장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다. 넘버 3인 푸모리는 2001년 에베레스트 푸모리봉 원정 도중 잃은 동료를 기리기 위해 붙여 줬다.

먹이는 보통 사료이지만 특별식으로 넙치나 바다표범 고기를 잘라 주기도 한다. 항상 배가 고픈 개들은 생고기를 씹지도 않고 삼켜 버린다. 배가 부르면 달리지 않기 때문에 이틀에 한 번 꼴로 먹이를 준다. 개들도 달려야 먹이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주인이 하네스를 들고 나타나면 저마다 달리고 싶다고 아우성이다.

하네스를 건 개들을 부채꼴로 펼쳐 썰매에 묶자 개들이 일제히 홍 대장을 바라보며 명령을 기다린다. 썰매에 몇 명이 타건 명령은 오직 주인 한 명만 내린다. “까까(가자)” 명령이 떨어지자 개들이 일제히 출발한다. 평탄한 눈 위에서 시속 20Km까지 내는 개들은 채찍과 명령어로 적절히 통제해야 한다. 오랜 역사의 그린란드 이누이트와 썰매견이 의사소통을 해 온 명령어가 있다. ‘이리이리’는 오른쪽으로 가, ‘우니깃’은 멈춰, ‘아이아이’는 싸우지마, ‘이리릿’은 힘내서 가자, ‘맘가삣’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다.

달리는 동안 개들은 끊임없이 서로 몸싸움을 하며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오려 한다. 기싸움이다. 달리는 동안 계속해서 서로 자리를 바꾸는 통에 개줄이 자주 꼬여 심할 경우엔 썰매를 세워 꼬인 줄을 풀어 줘야 한다.

일루리삿(그린란드)=조영호기자 you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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