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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축제, 교내 노동자와 함께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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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축제, 교내 노동자와 함께 웃다

입력
2011.05.1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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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야유회 온 거 같네. 날씨도 좋고, 호호."

18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서강대 청년광장. 교내 청소노동자들과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총학생회가 처음 마련한 '사랑의 밥짓기' 행사가 열렸다. 대동제 첫날인 이날 청소노동자들과 학생 80여명은 화창한 봄볕아래 한자리에 모여 유부초밥과 충무김밥을 만들며 모처럼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여성노조 부회장 박갑심(56)씨는 "지금까지 대학 축제는 그저 남 얘기였는데 우리도 학교의 구성원으로 생각해 준 게 무척 기쁘다"며 "김밥 하나를 먹더라도 같이 하자는 학생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흐뭇하게 웃었다. 옆에서 유부초밥을 먹던 경숙내(61)씨도 "평소 대기실에서 사온 밥을 먹거나 직접 지어먹었는데 이렇게 야외에 둘러앉아 함께 먹으니 소풍 나온 것 같다"고 거들었다. 네박자 유행가 등 트로트가 흐르자 몇몇은 즉석 '막춤'을 선보여 흥을 돋웠다.

정오가 되자 수업을 마치고 지나가던 학생들도 "밥 먹고 가라"는 청소노동자들의 권유에 하나 둘 자리에 합류했다. 쭈뼛쭈뼛하던 학생들도 청소노동자들이 먼저 음료수를 따라주며 말을 건네자 어색함을 금세 풀었다. 학생회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보고 왔다는 이유정(19)씨는 "평소 얘기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어머니들과 같이 먹으니 더 맛있는 것 같다"고 했다. 청소용역업체 소장 이정국(63)씨가 "서강대에 온 지 보름 정도 됐다"고 소개하자 황은영(21)씨는 "그럼 저희보다 더 새내기시네요"라고 해 폭소를 자아냈다.

총학생회 정정로(22) 정책국장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사실 서로 사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행사를 마련했다"며 "20대의 미래가 비정규직 어머니들과 무관한 게 아니기에 이번 행사가 꾸준히 교류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 국장은 또 "대동제 때마다 많은 쓰레기로 몸살을 앓았는데 올해는 뒷정리를 잘 해서 어머니들 짐을 덜어드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시간 이화여대에서는 미화ㆍ경비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이화인 한솥밥 먹기' '한마음 체육대회' 등이 열렸다. 딸보다 어린 학생들과 제기차기 수건돌리기 계주 등을 즐기며 60대의 미화ㆍ경비노동자들은 동심(童心)으로 돌아갔다. '아자아자' '지화자' 팀 이름을 목청껏 외치며 응원전도 펼치고 벌칙에 걸리면 앙증맞은 율동과 함께 산토끼 옹달샘 등 노래도 불렀다.

경비직으로 일한 지 2년 됐다는 김준호(61)씨는 "올 봄 임금ㆍ단체협상 때 학생들이 많이 도와줘 쉬는 날이지만 기꺼이 참여했다"며 "함께 어울려 놀다 보니 나이도 잊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회를 본 정윤지(23ㆍ법학4)씨는 "학생 미화노동자 등 존재 자체에 달린 수식어를 뛰어넘어 이화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우리'를 바라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청소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발표에서는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이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달 4일부터 이달 11일까지 총 98개 건물의 165명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한 결과, 93.2%(137명)가 정규직이 아닌 용역직으로 고용돼 하루 평균 8.7시간을 일하며 세후 100만원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섯 명 중 한 명꼴(21.2%)로 산업재해를 당한 적이 있지만 그 중 절반(54.5%) 정도만 산재보험으로 처리하고 있어 보상은커녕 치료비조차 제대로 받고 있지 못했다. 멸시와 조롱, 부당업무 지시 등 인권침해에 시달렸다고 답한 비율도 60%(82명)나 됐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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