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이 조용히 지나간다. 마치 혼자 까치발을 하고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 긴 복도를 소리 없이 지나가는 것 같다. 잠깐, 하고 불러 세우고 싶지만 침묵이 서로에게 편할 것 같다. 내게는 붉디붉은 ‘원죄’ 같은 날인데 캠퍼스는 축제전야제 준비로 흥겹다. 그렇다고 저 신록 같은 청춘들을 나무랄 수 있는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들은 대부분 1980년 이후의 주민등록번호를 가진, 5월 18일을 학교에서 민주화운동기념일로 배운 세대다. 누군가를 잡고 그날의 광주를 이야기 해 주고 싶다. 그 5월을 이야기 해 주고 싶다. 하지만 그 5월은 저 친구에게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 이야기하면 어딘가로 잡혀가던 시절과 요란한 법정기념일이 된 시대는 다르다. 유언비어처럼 떠돌던 5ㆍ18. 유령처럼 찾아오던 소문들. 군홧발 소리. 총소리. 꽃잎처럼 금남로 뿌려진 너의 붉은 피, 왜 쏘았지 왜 찔렀지,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끊어지며 들리던 노래. 어떻게 저 친구들에게 그 5월에 대해 동의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겐 그들의 5월이 있다. 그들의 고뇌가 있고 넘어야 할 벽과 현실이 있다. 지금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입은 침묵하며 귀를 열어야 한다. 5월 18일은 축제의 전야제, 오늘은 남성 듀오 ‘디셈버’가 내일은 인기가수 이승기가 온다고 한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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