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5월에 침묵하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5월에 침묵하다

입력
2011.05.18 07:04
0 0

5월 18일이 조용히 지나간다. 마치 혼자 까치발을 하고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 긴 복도를 소리 없이 지나가는 것 같다. 잠깐, 하고 불러 세우고 싶지만 침묵이 서로에게 편할 것 같다. 내게는 붉디붉은 ‘원죄’ 같은 날인데 캠퍼스는 축제전야제 준비로 흥겹다. 그렇다고 저 신록 같은 청춘들을 나무랄 수 있는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들은 대부분 1980년 이후의 주민등록번호를 가진, 5월 18일을 학교에서 민주화운동기념일로 배운 세대다. 누군가를 잡고 그날의 광주를 이야기 해 주고 싶다. 그 5월을 이야기 해 주고 싶다. 하지만 그 5월은 저 친구에게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 이야기하면 어딘가로 잡혀가던 시절과 요란한 법정기념일이 된 시대는 다르다. 유언비어처럼 떠돌던 5ㆍ18. 유령처럼 찾아오던 소문들. 군홧발 소리. 총소리. 꽃잎처럼 금남로 뿌려진 너의 붉은 피, 왜 쏘았지 왜 찔렀지,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끊어지며 들리던 노래. 어떻게 저 친구들에게 그 5월에 대해 동의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겐 그들의 5월이 있다. 그들의 고뇌가 있고 넘어야 할 벽과 현실이 있다. 지금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입은 침묵하며 귀를 열어야 한다. 5월 18일은 축제의 전야제, 오늘은 남성 듀오 ‘디셈버’가 내일은 인기가수 이승기가 온다고 한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