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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족 소년, 링 위에서 꿈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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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족 소년, 링 위에서 꿈을 얻다

입력
2011.05.1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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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계 형사 출신 신동선 관장의 '헌신적 사랑'에…인연 맺은 전과자 등에 복싱 권하고 가르쳐"꼴통 하나 사람 만들어봐" 지인 소개로 현우와 인연'좌충우돌 제자' 다잡으려 함께 땀 흘리고 벽 허물어

"돌지 말고 쭉 뻗어! 원! 투! 원! 투! 주먹에 힘을 주란 말이야."

16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동 반달곰 권투체육관. 신동선(55) 관장의 목소리가 190㎡(60평) 남짓한 실내를 쩌렁쩌렁 울렸다. 링에는 땀방울을 쏟아내는 중학생 복서 현우(15ㆍ가명)가 주먹과 발을 쉴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복서는 관장의 손에 낀 미트를 때리고, 관장은 복서에게 쉴새 없이 동작을 주문했다. 이들의 눈빛은 숨이 멎을 만큼 날카로웠고, 리듬감 있는 몸놀림은 경쾌했다.

둘은 지난 3월 처음 사제의 연을 맺었다. 관장은 지난달 서울강서경찰서에서 퇴직한 전직 강력계 형사, 복서는 수 차례의 절도 경력을 가진 현직 '폭주족 겸 학교 짱.'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닌 듯 보였다.

신 관장은 "학교 보안관으로 있는 옛 동료가 '골통이 하나 있는데 사람 만들어 봐라'고 해서 데려왔는데 경찰서를 워낙 자주 드나들어서인지 근성도 있고, 싸우는 실력도 탁월했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옛 동료의 '특별한 부탁'은 신 관장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그는 25세 때 경찰이 된 이후 알게 된 불우ㆍ비행 청소년, 전과자 등에게 권투를 권하고 직접 가르쳐왔다. 그 역시 경찰 입문 전 구두닦이 등을 전전하다 복싱을 배우며 삶의 의지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퇴직한 후에도 여전히 "형사님"이라며 찾아오는 제자들이 자랑스럽다. "그냥 사고 치지 말고 복싱이나 배우라고 학비나 생활비를 대준 거밖에 없어요." 집 한 채 없는 그는 체육관 역시 지인들이 마련해준 3,500만원으로 보증금(1,000만원)과 월세(월 135만원)를 내며 운영하고 있다.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청소년만 얼추 150여명. "한 번은 현장에서 범인에게 수갑을 채웠는데 보니까 제 제자더라고요. 일단 구속시키고, 계속 운동을 시켰죠. 결국 프로 권투선수가 됐는데, 아직도 기억이 나요."

그런 스승의 맘을 알리 없는 현우는 여전히 사고뭉치다. 이날도 현우는 "어제 부천에서 한 건 했다"고 으쓱거리는가 하면, 20일 전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넘어지는 등 사고의 연속이다.

신 관장은 별 말이 없다 한숨을 쉬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혼내지도 못하고 그런 건데, 저 녀석 주먹을 보면 아깝단 말이죠. 마음만 잡으면 충분히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주먹이거든요."

그러나 현우를 향한 믿음은 확실하다. 그는 "학교에서는 문제아, 사회에서는 비행청소년, 집에서는 말썽꾼이니 어디 관심을 받을 곳이 없어 저러는 것"이라며 "다그치기보다는 함께 땀을 흘리면서 마음의 벽을 조금만 허물면 바뀔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우도 맞장구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도 절 못 건드려요. 다들 짜증나는 잔소리지만 복싱 관장님은 저에게 더 잘해주는 걸 아니까 괜찮아요. 학교 선생님들보다 관장님이 더 좋아요."

현우가 "전 이 소리가 너무 좋아서 계속 체육관을 다닐 것"이라며 신 관장이 끼고 있는 미트를 강하게 쳤다.

체육관 이름인 '반달곰'은 형사 시절 신 관장의 별명이다. "한번 물면 3년을 쫓아다니고, 한방에 일망타진한다고 조직폭력배들이 붙여준 것"이란다. 반달곰 형사는 "이 녀석도 나한테 한번 물렸으니까 국가대표는 물론이고 사람도 될 것"이라며 현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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