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는 원래 은하도시였다. 비즈니스도, 기초과학연구원도 없었다. 대신 예술이 있었다. 세계 일류 과학자들이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며 연구하는, 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상상의 공간이었다. 2005년 은하도시 개념을 처음 만든 건 당시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였던 민동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을 중심으로 한 과학과 예술, 인문학 교수들의 모임 랑콩트르였다.
학자들의 꿈 은하도시는 2006년 대선주자였던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에게 보고되면서 정치색을 띠기 시작했다. 2007년 그가 한나라당 공식 후보가 될 때까지 대규모 기초과학 육성 프로젝트로 구체화했다. 한나라당은 일류국가비전위원회 과학기술 분야 대표 공약으로 과학벨트를 확정했고, 그때부터 은하도시는 과학벨트가 됐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과학벨트태스크포스(TF)가 꾸려졌고, 이듬해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등 관련 부처들이 과학벨트추진지원단을 만들었다. 지원단이 제출한 과학벨트종합계획을 2009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심의∙확정했고, 이어 정부는 과학벨트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과학벨트가 정치와 지역 간 이해관계에 얽히면서 표류하기 시작한 건 2010년 1월 정부가 세종시를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로 바꾸는 수정안을 발표하면서다. 그 핵심이 과학벨트였다. 기초과학 육성 프로젝트는 어느새 지역개발 계획으로 둔갑했다.
같은 해 6월 수정안은 국회에서 부결됐지만 과학벨트특별법은 6개월 뒤 통과했다. 올 초 “(충청권 유치는) 공약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며 입지 원점 검토를 시사한 이 대통령의 발언은 지자체의 유치전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지난달 출범한 과학벨트위원회가 이달 16일 대전을 입지로 확정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이 과정을 지켜본 과학자들은 “지방자치단체가 관심 있던 건 기초과학이 아니라 5조1,800억원”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과학이 정치로 오염되는 과정을 잘 보여 준 사례”라고 꼬집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견도 나온다. 민경찬 연세대 수학과 교수는 “과학자들이 위기의식을 갖고 나서서 과학벨트를 정치적 지역적 과제에서 과학적 과제로 전환시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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