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의 핵심은 중이온가속기를 중심으로 한 기초과학연구원이다. 연구원 본원과 3개 캠퍼스(대덕 카이스트, 경북권 D∙U∙P 등, 광주 GIST) 소속 연구단에 단계적으로 약 3조5,465억원, 중이온가속기에 4,604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이에 대해 과학자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기초과학에 대한 획기적 투자라며 반기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구체적 연구 방향이 모호한 대형 하드웨어 중심의 섣부른 투자라며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중이온가속기나 기초과학연구원이 정말 절실히 필요한 시설인지에 대해 과학계 전체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중이온가속기 없어도 그만
중이온가속기의 공식 이름은 한국형희귀원소가속기(KoRIA)다. 수소와 헬륨보다 무거운 모든 원소를 전기를 띤 상태(이온)로 만들어 가속시키는 장치다. 가속한 이온을 다른 원소와 충돌시키면 자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한 원소들이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거나 우주 탄생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고 핵융합에너지나 핵폐기물 처리 같은 과학의 오랜 난제들을 풀 열쇠를 찾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중이온가속기는 핵물리학이나 우주물리학 등 몇몇 제한적 분야에서 활용하는 시설이라는 의미다. 국내 대학의 한 물리학자는 “중이온가속기로 하는 연구는 물리학 분야 중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며 “사용 인원도 학생까지 쳐도 200명쯤밖에 안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짓는다고 해서 당장 노벨상을 배출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있으면 좋겠지만 반드시 필요한 연구 시설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는 많지 않다는 소리다.
중이온가속기 연구성과 중 현재 과학자들이 산업화 가능성이 확실하다고 보는 건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이나 암 치료 정도다. 거점지구와 연계해 산업화를 담당할 기능지구 중 이와 관련된 기반이 어느 정도 갖춰진 곳은 현재 충북 청원군 오송생명과학단지 일부가 꼽힌다. 청원군 오창이나 충남 연기군(세종시) 천안시와의 연계성은 부족하다는 시각이 많다. 화학계 원로인 진정일 고려대 명예교수는 “중이온가속기가 있는 외국 연구소에서 이미 공동연구 제안도 받았다”며 “가속기 지을 돈을 차라리 기존 기초과학 연구자들에게 지원해 주는 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뭐 할지 모르는 기초과학연구원
기초과학연구원과 기존 정부출연연구기관과의 관계도 애매하다. 현재 국내 27개 출연연은 교육과학기술부 기초기술연구회(13개)와 지식경제부 산업기술연구회(14개) 소속으로 나뉘어 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이들과 달리 교과부 소속의 별도 법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출연연법의 적용을 받지 않도록 과학벨트특별법에도 명시돼 있다. 결국 기초과학연구원을 둘러싸고 기존 출연연과의 형평성이나 중복 투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오대현 과학벨트기획단 기획조정과장은 “기초과학연구원의 구체적 위상이나 운영 방안은 12월까지 수립될 과학벨트 기본계획에서 결정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약 3,000명 규모의 기초과학연구원을 채울 우수한 인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느냐에 대해 회의적인 과학자들도 있다. 교과부와 과학벨트기획단은 많은 인력을 외국에서 데려온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한 이공계 대학 교수는 “엄청난 예산을 투자한 연구 시설을 어차피 다시 자국으로 돌아갈 외국인들로 채운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불만을 나타냈다.
기초과학연구원 소속 50개 연구단이 구체적으로 무슨 연구를 할지도 결정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연구단을 지역적으로 먼저 배분한 데 대해 과학계에선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기초과학 육성이라는 본래 취지보다 입지 선정으로 인한 지역 갈등을 봉합하려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채영복 경기도바이오센터 이사장은 “지역균형발전 논리를 내세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선정했다”며 “특히 연구단은 유능한 연구팀이라면 수도권이나 강원 지역 등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몇 개 지역에 몰아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남은 돈 문제
과학벨트기획단에 따르면 2012년 과학벨트 예산으로 현재 4,100억원이 확보돼 있다. 문제는 사업 후반기인 2014~2017년에 무려 3조9,700억원이 집중 투입된다는 점이다. 정권이 바뀐 뒤에도 이 예산 계획이 그대로 유지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총 5조1,800억원의 과학벨트 사업비에는 부지 관련 예산이 들어 있지 않다. 사업이 본격 추진되면 거점지구로 선정된 지방자치단체나 재정 당국이 추가로 돈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거점지구인 대전 신동ㆍ둔곡지구 면적 112만평에 부지 분양가(평당 140만~150만원)를 적용하면 부지 확보에 필요한 비용은 1조6,00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이제부터 지자체와 부지 매입 비용 규모와 분담 형태 등을 논의해 과학벨트 기본계획에 담겠다는 입장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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