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보다 한층 업그레이드"전쟁영화 하고 싶지 않았는데노르망디 다큐보고 심장 뛰어장동건, 완벽하게 역할 소화다음엔 경쾌한 영화 할 생각
턱 선이 날렵해졌다. 그을린 얼굴은 살짝 여위었지만 건강해 보였다. 촬영장의 열기와 긴장감이 전해졌다.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으로 한국영화 흥행사를 새롭게 써왔던 명장의 면모는 변함이 없었다.
'마이 웨이'(12월 개봉)로 7년 만에 복귀하는 강제규 감독을 14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만났다. 그는 '마이 웨이'를 홍보하는 제작보고회에 참석하기 위해 칸을 찾았다.
실화를 밑그림 삼은 '마이 웨이'는 일제 식민지 시절 마라톤 선수를 꿈꾸다 전화에 휩싸이는 조선인 김준식(장동건)의 파란만장한 삶을 좇는다. 일본군에 징집됐다가 옛 소련군 포로로, 소련군에서 다시 독일군 포로로, 그리고 독일군이 되어 노르망디 전투에 참가하는 김준식의 행로가 장대한 스펙터클로 펼쳐진다.
제작비만 300억원, 한국영화 역사상 최대다. 국내 흥행으로만 따지면 얼추 1,000만 명이 봐야 본전을 챙기는 대작이다. 해외시장 개척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메종 드 히미코' 등으로 국내에도 팬이 적잖은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 중국의 간판 미녀배우 판빙빙이 힘을 보탠다. 지난해 10월 크랭크인 해 85% 가량 촬영했고, 노르망디 전투를 다룰 라트비아 촬영을 앞두고 있다.
-오랜만의 복귀작인데다 대작이라 부담이 크겠다.
"심리적 부담은 영화 촬영 전에 더 컸다. 영화를 준비하며 스스로 확신을 갖게 되는 과정이 힘들었다. 시나리오 쓰고 제작비를 모으며 늘 희비가 엇갈렸으니 긴장도 되고 조심스럽고 책임감도 따랐다. 그래도 시나리오 쓸 때는 (잘 되리라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전작에 이어 같은 배우와 전쟁영화를 다시 하게 됐다.
"장동건과 처음 시나리오 놓고 이야기할 때 둘 다 부담이 있었다. 과연 '태극기 휘날리며' 때보다 진화할 수 있을까 하는. 전작과 다른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가능하리라고 봤다. 전쟁영화지만 '태극기 휘날리며'랑 이야기 구조나 시대적 상황이 너무 다르다."
-7년간 영화를 찍지 않아 정체된 느낌이 들만도 하다.
"영화를 실제 찍지 않아도 이리저리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감독들은 내면적으로 영화를 만든다. 영화화 되지 않았지만 시도한 시나리오 등을 통해 성장 과정을 밟게 된다. 내게도 마음 속으로 만든 그런 영화들이 있었다."
-마음 속으로 찍은 영화 중 가장 아쉬움이 남는 것은?
"2005년부터 할리우드 진출을 위해 준비했던 SF '요나'다. 2009년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4년 동안 올인 한 프로젝트다. 아직 진행형이라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미국에서 하려 했던 게 문제였다. 할리우드에서 원하는 영화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판단을 잘못했다. 지금은 미국 영화현장을 많이 이해하고 있다."
-관객들의 기호도 그 동안 많이 변했다.
"변하지 않은 점이 더 많다. 결국 관객을 움직이는 것은 이야기다. 이야기를 운반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좀 변했을 뿐이다. 난 스스로를 열어놓고 많이 받아들이는 성격이다. 새로운 미장센과 테크닉을 충분히 응용할 생각이다. 그래도 핵심은 서사구조다."
-'태극기 휘날리며' 끝내고 다시는 전쟁영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지금도 정말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전쟁영화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장르다. 지금이야 영화를 많이 찍었으니 이렇게 여유가 있지 찍는 동안엔 정말 참혹했다."
-그런 전쟁영화를 다시 한 까닭은?
"감독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엇이 영화를 만들게 한다. 운명적인 것이다. '요나'에 온 열정을 쏟아 다른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노르망디의 조선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선 심장이 뛰어 새벽까지 잠을 못 잤다. 그냥 마음이 움직였다. 군복을 세 번이나 갈아입는 사람 이야기는 전무후무하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스태프랑 함께 하는데 기술적으로 많이 업그레이드됐다. 새로운 영상을 만들고 있어 매우 행복하다."
-장동건과의 호흡은?
"그는 큰 산 같은 배우다. 귀신처럼 안 하는 척 하면서 완벽하게 역할을 소화하고, 그러면서도 감독에게 여백을 주는 지혜롭고 열정적인 배우다. 인간성, 성실함도 어떤 배우와도 비교하기 쉽지 않다. 그의 대사 60% 정도가 일본어다. 최선을 다해달라고 했는데, 대본 리딩할 때 일본 배우들이 깜짝 놀라더라. 감정 전달이 잘 된다고. 그게 그의 매력이다."
-다음 작품은?
"내가 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내 각본으로 해야 한다는 결벽증이 있었다. 또 주제가 무겁고 스케일이 큰 영화만 해왔다. 좀 더 경쾌하고 밝고 재미있는 아이템이 있는데 이 영화 끝나면 곧바로 하고 싶다. 2년에 하나 정도는 해야 생계가 유지될 듯 해서...(웃음)."
칸=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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