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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기획] 한중일 가족 문제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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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기획] 한중일 가족 문제 좌담회

입력
2011.05.1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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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회가 가족의 복지부담 적극 떠안아야 가족 해체 막아"

"여성 자아실현 욕구 상승 국가·사회의 역할론 대두""과도한 가족 규범 역효과 탈가족화 정책이 대안으로""日 여대생 결혼관 큰 변화 女역할 인식 속도 빨라져""中 개방후 가정 부담 커져 남성 육아휴직 등 보장을"

현대사회에서 가족은 안식처인가, 족쇄인가. 사회는 '안식처'라고 답하라고 강요하지만, 의무에 짓눌리는 개개인의 마음 속에는 후자를 외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13일 서울 중구 여성가족부 장관 접견실에서 백희영 장관과 진이홍(金一虹) 난징(南京)사범대 교수, 오치아이 에미코(落合惠美子) 교토대 교수, 가미카이도 켄이치(上垣外憲一) 오테마에대 교수 등 한중일 전문가들이 만나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족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현대사회에서 가족문제는 복지문제와 많이 연결돼 있다. 동아시아는 복지문제를 상당부분 가족 내에서 해결해왔고, 그 과정에서 여성이 희생되는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가족제도의 변화로 이런 전통은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게 됐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백희영 장관= 바른 지적이다. 대가족 제도가 사회안전망 역할을 했고, 압축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가족이 복지를 담당해왔다. 여성들의 사회활동에 많은 제약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한국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비율은 낮다(한국 53.9%, 일본 62.9%, 노르웨이 76.5%, 미국 69%, 호주 70.1%). 여성들의 교육과 사회활동 열망이 높아지면서 만혼, 결혼기피, 출산기피로 이어져 지속적인 성장에 우려가 되고 있다. 여성들 자아실현 욕구가 커지는 걸 국가와 사회가 뒷받침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아이 돌보미 사업 등을 통해 자녀양육 부담을 줄이려 하고 있고, 가족친화적 기업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돌보미 사업이 너무 제한적인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백 장관은 "올해는 3만 가구(지난해 1만 가구)로 혜택이 늘었으며, 시설보육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제도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진이홍 교수= 중국도 예전에는 회사ㆍ단체에서 아이를 돌봤는데 경제개혁개방 이후 시장에 그 임무를 맡겨서 가정에 부담이 되고 있다. 때문에 진학 전부터 국가가 의무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노인부양 문제도 정부가 제공하는 양로시설과 수요에 많은 격차가 있다. 여대생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워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고용주들이 채용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중국 여성의 사회활동에는 제약이 많이 따를 것이다.

오치아이 교수= 옛날에는 일본도 여성 노동력 활용이 스웨덴이나 미국처럼 높았다. 그러나 정부가 1980년대 일본형 복지를 구축한다는 미명하에 '가족화 정책'을 쓰면서 여성이 취업을 안 해도 세제와 사회보장면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85년부터 연간 130만엔 미만을 버는 주부에게는 연금혜택을 주도록 해 일본 여성의 풀타임 사회활동 진출이 정체됐으며, 현 민주당 정부는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으나 자민당의 반대로 폐지되지 않고 있다고 추후 설명함). '일본형 복지'라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가족이 복지를 담당하자는 정책이었고,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90년대 정책 전환이 있었지만 별로 철저하지 않았다. 유럽과 비교해 아시아는 돌봄서비스를 시장에 크게 의존하는데, 일본 주부는 그런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한국은 집에서 간병인, 가사도우미 등을 고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일본은 (그런 제도가) 거의 없다. 외국인 가사 노동자는 일본법률상 고용할 수 없으며 일본 여성의 부담은 아시아 여타 나라에 비해 상당히 무겁다.

-한국에서는 정상가족과 비정상 가족을 구분하는 문화가 있고, 이 때문에 미혼모가 아이를 낳으면 버리는 등 고통을 받는다. 과도기적인 인식문제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백 장관= 젊은 세대들의 성에 대한 태도가 변했음에도 임신, 피임, 출산에 대한 교육이 못 따라가는 괴리가 있다. 아이는 모두 축복할 수 있는 상태에서 낳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혼모보다 한부모 가정이란 말을 쓰고 싶은데, 한부모 가족에 대한 인식은 최근 많이 개선됐다. 인식보다는 경제적 문제가 더 큰 것 같다(입양선택 미혼모 중 37.7%가 경제적 지원이 있다면 양육을 희망한다는 설문조사가 있음).

오치아이 교수= 유럽보다 일본이나 아시아의 출산율이 더 낮다. 혼외출산이 적은 것이 큰 차이다. 결혼ㆍ가족관계는 아시아에서는 별로 변화가 없다. 오늘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게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시아가 가족 위기에 처한 것 아닐까 한다. 가족을 구성하면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결혼을 기피하고, 가족은 서로 돌봐줘야 하니 그것이 리스크가 돼서 회피한다. 가족의 규범이 너무 강하니 가족에서 벗어나려는 문제가 벌어지는 것이다. 유럽에서도 현재 대가족 붐이 일고 있지만, 유럽은 보육시설이 충실하게 잘 돼있어서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머지 부분만 도와주면 되기 때문에 만족하고, 자식도 부모에게 큰 부담 주지 않아도 되니까 만족한다. 많은 걸 요구하지 않으니 만족도도 높은 것이다. 국가가 가족간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적 행정적 지원을 해서 가족의 고유 기능이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유럽이 좋은 사례인 것 같다(오치아이 교수는 이날 오후 이화여대에서 열린 '한중일 가족, 현재와 미래' 심포지엄에서 북유럽 국가들은 70년대 '탈가족화 정책'을 써서 인구변화 위기를 극복했지만, 일본은 시대착오적 '가족주의 정책'으로 회귀해 지속불가능한 사회가 됐다고 진단했다).

가미카이도 교수= 전후에 활동한 일본의 한 작가는 '부모가 없어도 아이는 자란다'는 것은 당치않은 이야기이며, '부모가 있어도 아이는 자란다(부모가 자녀의 성장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의미)'는 역설을 말한 적이 있다. 예전에 캐나다에 살았는데 한중일 부모들의 교육열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아이에게 너무 큰 부담 지우는 것 같았다. 이런 문제를 지나친 가족주의와 연계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진 교수= 중국 결혼법 등에는 미혼모 자녀도 똑같이 대우하도록 돼있지만 산아제한 정책이 엄격해 그들은 인권 사각지대에 있고, 합법적 지원을 받을 수 없어 미혼모가 자녀를 버리는 상황도 많다. 중국에는 또 아이들 교육과 비용문제는 모두 부모 책임이며, 그 중에서도 엄마 책임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하다.

-직장에서 가족친화적 제도, 즉 육아휴직이나 유연근무제가 도입되고 있으나 주로 여성들만 사용한다. 여성들의 권리이지만 오히려 채용 기피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남성들도 이를 많이 사용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백 장관= 우리나라에선 맞벌이건 아니건 여성의 가사부담이 높다. 가족친화제도가 성공하려면 남성들 참여가 필요하다. 그래도 젊은 층에서는 증가하고 있다. 기업 인사제도가 복잡해지는 측면은 있지만, 이런 미래지향적 제도가 인재들을 끌어 모은다.

진 교수= 중국도 남성이 육아휴직을 낼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지만, 정책이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오치아이 교수= 일본 젊은 세대들은 남성도 육아휴직 등을 많이 쓰기를 원하지만, 남성 상사가 눈총을 주니 취하기 어렵다. 윗세대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한가지 지적할 점은, 비정규직 비율이 늘어나면서 이들은 그런 권리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가미카이도 교수= 아내가 아이 낳고 나서 녹내장에 걸려서 내가 딸을 키웠다. 저는 남자지만 애 키우는 건 남자입장에서도 큰 기쁨이었다. 다른 아버지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때 국립연구소에 있었고 수업이 없어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밤 10시까지 근무해야 하는 대기업에 다녔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육아휴직은 제도상으론 존재하지만 쓴다고 하면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끝으로 자국 혹은 동아시아 가족문제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백 장관= 3국이 공통문제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가족에게 복지 부담을 과하게 지우면서 가족이 해체되고 출산과 결혼기피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 동감한다. 시설 중심의 돌봄과 가족이 참여하는 돌봄이 조화를 이뤄야 당사자들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갖게 되고 사회 안정화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가족과 지역사회를 연계하고, 친인척 혈연을 돌봄서비스 안전망으로 활용하는 등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가미카이도 교수= 요즘 여대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결혼 않고 동거하는 거 나쁘다고 생각 안 하더라. 일본은 변화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했는데 여성의 의식은 꼭 그렇지도 않다고 느꼈다. 앞으로는 가족ㆍ여성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속도가 훨씬 빠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20살 무남독녀 딸이 있는데, 딸의 미래를 생각해보게 된다.

진 교수= 나도 결혼 안 한 딸(29)이 하나 있다.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중국은 농촌에서 도시로 온 가사도우미 여성들은 처우가 열악하고, 석ㆍ박사 여성들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이런 문제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다.

오치아이 교수= 지금 일본은 계층간 격차 문제가 심각하다. 교육 정도가 낮은 사람들은 비정규직밖에 취업을 못하고 그들은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못 갖는 게 최대의 문제다(한국도 그렇다고 했더니 그는 그러냐고 호응했다). 제 딸(27)도 꽤 좋은 대학을 나왔는데 비정규직이다. 앞으로 결혼을 할지, 아이나 낳을 수 있을지, 육아휴직은 쓸 수 있을지 걱정된다.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동아시아에서는 '가족의 복지는 가족이 맡아야 한다'?목소리가 큰데 그것은 정치적 목적이 있는 말이다. (정치세력들이) 복지예산 삭감 등을 달성하기 위해 내거는 것이다. 그런 데에 이용되지 않도록 분발해야 한다.

● 백희영 여성가족부 장관

1950년 출생

미국 미시시피여대 식품영양학과 졸업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식품과학 석사

미국 하버드대 영양학 박사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현 여성가족부 장관

● 오치아이 에미코 교토대 교수

1958년 출생

도쿄대 문학부 졸업

케임브리지대학 객원연구원

도쿄대 대학원 문학연구과 조교수

현 교토대 문화연구과 교수

현 일본학술회의 회원

● 가미카이도 켄이치 오테마에대 교수

1948년 출생

도쿄대 교양학부 졸업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연구원

중국 베이징 외국어대학 일본연구중심 객원교수

현 오테마에대 문화학과 교수

현 국제비교문학회 동아시아 연구위원장

● 진이홍 난징사범대 교수

1947년 출생

중국 부녀자 연구회 상무이사

장쑤성 부녀자 연구회 부회장

장쑤성 가정학회 부회장

현 난징사범대 금릉부녀발전중심 주임교수

사회=이진희기자 river@hk.co.kr

정리=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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