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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이가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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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이가 들면

입력
2011.05.1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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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반 스님들을 만나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무척이나 공감되는 이야기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말을 줄이고 삼가야 하며 주머니는 열어서 베풀어야 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산사에 사는 사람들도 윗사람의 잔소리는 듣기가 싫고, 베풀어주는 후한 인정은 반가운 것이다.

산사에서 살기 시작한지 20년이 지나 30년에 더 가까워져 간다. 이렇게 무심한 세월이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위로 모셔야 할 어른과 선배보다 가르치고 끌어주어야 할 후배들이 더 많아졌다. 처음 출가해서는 얼른 5년, 10년의 세월이 지나서 경력을 가진 승려가 되고 싶어 했었는데, 이제는 거꾸로 그 세월만큼만 지난 싱그러운 젊음을 부러워하게 되었다.

학인 시절 어른들을 찾아 다니며 인사를 드리고 책값과 용돈을 챙기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이제는 찾아오는 학인들의 책값과 여비를 챙겨주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배우고 공부한 것이 헛된 것이 아닌지, 학인들이 인사를 오면 이전 어른들께서 하시던 모양으로 같은 물음을 던지고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아마도 우리에게 전해질 때까지 수 백 년 동안 비슷한 내용으로 전해졌을 그런 말씀들일 것이다.

우리의 학인 시절에는 어른 스님을 만나 뵈려면 2~3일은 머물며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며칠이고 기다리다가 어른이 부르시면 방으로 들어가서 짧아도 두어 시간, 보통 한 나절씩은 이런저런 말씀을 듣느라고 무릎이 부서지는 고통을 참고 견뎌야 했다. 그런데 요즘은 세월이 달라져서 그런지 우리의 젊은 시절하고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어지간하면 오지도 않고 휴대전화로 인사를 대신하기도 하고, 절에 와서도 좀처럼 자고 가는 법이 없다. 뭐가 그리 바쁜지 인사를 마치기 무섭게 벌떡 일어나 가려고 한다.

세상의 편안한 생활에 익어져서 그런지 조금이라도 불편한 것을 견디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출가하는 사람들에 비해 일찍 입산한 까닭에 속가나이를 따져보면 서로 연배가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산사 생활 20년 남짓한 차이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을 전혀 다른 입장에 서있게 만들고 있다.

때로 비슷한 나이로 함께 늙어가는 후배들을 대하려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엄격한 어른 노릇을 하자니 비슷한 나이가 걸리고, 부드럽고 편하게 대하자니 제대로 된 승려의 자격과 틀을 갖추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다. 배움의 위치에 있는 본인들도 힘들고 어렵겠지만 가르치고 이끌어야 하는 입장에서도 보통 까탈스러운 일이 아니다.

힘들게 윗사람 모시면서도 세월이 지나면 우리들에게도 좋은 시절이 올 거라며 위안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중에 세월의 자리가 마련되고 힘이 생기면 많이 편안해지고 여유가 생기리라 믿었었다. 그리고 그런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위로 어른들을 더 잘 모셔야 하고, 아래로 나이가 들어서 출가한 후배들 챙기기에 힘을 많이 써야 한다. 게다가 주머니는 활짝 열고, 입은 꾹 닫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어찌 행동해야 할 지 난감하다.

하지만 이런 일이 비단 이 시대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3천 년 전의 옛 사람도 "요즘 젊은 사람들 걱정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니 말이다. 그 시절에도 나이든 사람에게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라고 요구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어떠랴, 주머니를 닫고 입을 열든지 입을 닫고 주머니를 열든지 다 자기가 하기 나름이 아닐까 싶다.

주경 서산 부석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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