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한풀이인가, 속 좁은 넋두리인가. 특정 영화인의 실명을 거론하며 육두문자 섞인 독설로 한국영화계 풍토를 비판한 김기덕 감독의 신작 '아리랑'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2004년 '사마리아'와 '빈 집'으로 각각 베를린국제영화제와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대가답지 않다는 평가와 "그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13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아리랑'은 은둔형 외톨이가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과 자신을 버리고 떠난 측근들에 대한 분노, 지난 영화 인생에 대한 회한, 새 출발에의 의지 등이 뒤엉켜 있다. 러닝타임 100분 내내 김 감독 혼자 출연하고 연출과 촬영, 각본, 편집 등을 모두 혼자 해낸 형식상의 독특함도 눈길을 끌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지극히 도발적이다. '아리랑'은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고, 국내 개봉 여부는 불투명하다.
김 감독은 자신의 연출부 출신으로 '영화는 영화다'와 '의형제'를 만든 장훈 감독 등을 겨냥해 격한 비판을 쏟아낸다. "악마들이 영화를 못 만들게 한다" "배신자들 내가 지금 죽이러 간다" "너 같은 쓰레기를 기억하는 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온갖 욕설이 섞인 발언과 함께 스스로 권총을 만들어 누군가를 단죄하고 자살하는 장면 등이 이어진다.
김 감독은 "앞으로 두 편을 같이 만들자고 약속한" 장훈 감독과 자신의 오랜 프로듀서가 "자본주의의 유혹"에 끌려 자신을 버리고 메이저 영화사와 '의형제' 제작 계약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영화 속 '살인'과 '자살'을 통해 그 트라우마를 벗어나려는 일종의 통과의례를 치른 것으로 보인다. 13년 동안 15편을 만들 정도로 다작이었던 김 감독은 2008년 '비몽' 이후 영화 활동을 중단하고 줄곧 칩거해왔다.
카메라는 김 감독이 강원도 한 마을의 집 안에 텐트를 치고 봉두난발을 한 채 고구마를 구워먹고, 눈을 녹여 라면을 끓여먹으며 "개처럼 사는" 모습을 고스란히 비춘다. 그렇게 은둔하며 분노와 회한, 칭얼거림을 쏟아내는 김 감독, 그런 그를 꾸짖고 다그치는 또 다른 김 감독의 자아, 두 자아의 대화를 영상에 담아 이를 지켜보고 편집하는 또 다른 김 감독이 영화를 끌어간다. 김 감독의 외톨이 자아는 전작 '비몽' 촬영 중 목매는 장면을 찍던 주연배우가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악몽 같은 기억과 장훈 감독 등의 배신이 자신을 비참한 현실로 몰아넣었다고 한탄한다. 한국영화계를 향해 "도끼로 때려죽이고 망치로 때려죽이는 죽음에 대한 영화가 수없이 많다" "당신들(해외 영화제)이 날 발견해줘서 한국에서 인정해주는 감독이 되었다… 한국이란 사회는 많이 슬프고 아쉽다" 등 비판을 쏟아낸다.
'아리랑' 상영 중 많은 관객이 자리를 떴으나 기자들이 섞인 상영회로는 드물게 기립박수가 나왔다. 김 감독은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웃었고, 상영회장을 나갈 때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그런 건 없다. 영화로 다 말했다"고만 밝혔다. 그는 상영 전 무대에 올라 "칸이 잠 자고 있는 저를 깨웠다. 이 영화는 제 자화상과도 같은 영화"라고 말했다.
외국 언론의 영화평도 엇갈렸다. 영국 영화전문지 스크린인터내셔널의 칸영화제 일일 소식지는 "놀라운 1인 퍼포먼스"라고 극찬한 반면, 미국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는 "괴짜 김 감독의 팬들조차 따분해 할 영화"라고 평가했다.
칸영화제를 찾은 한국 영화인들의 반응도 각각이다. 한 영화인은 "특정 감독의 실명을 들먹여 국제적 망신을 줄 필요가 있었을까"라고 반문했고, 한 감독은 "'영화는 영화다'가 흥행했지만 정작 돈을 벌지 못하는 등 잇단 시련을 겪은 김 감독의 한풀이"라고 이해했다. 국내 네티즌 사이에서도 "거장답지 못하다"는 비판과 "통쾌하다.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반응이 맞섰다.
칸=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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