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지리학/최창조 지음/서해문집 발행·288쪽·1만5,000원
"나는 항상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명당이라고 여겼다. 지금도 당연히 그렇다. 좋은 면만을 부각시키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받아들인다." 풍수 전문가인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말하는 명당론은 상식과는 다르다.
<사람의 지리학> 은 후손을 위해 묏자리를 잡는 음택풍수(陰宅風水)를 비판하면서 현대사회에 맞는 풍수 이론을 개척해 온 저자가 자신의 자생풍수(自生風水)론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사람의>
저자는 풍수를 과학이나 지식이 아니라 조상들의 우리 풍토에 대한 지혜가 담겨 있는 어떤 것으로 본다. 좋은 땅을 골라 그 음덕을 좀 보자는 술법쯤으로 여겨지는 풍수에 대한 일반적 이해와는 격이 다르게 느껴진다.
신라 말 도선 국사가 정리해 도선풍수라고도 부르는 자생풍수의 본질은 한마디로 땅에 대한 사랑이다. 좋은 것만 갖춘 완전한 땅이 아니라 결함이 있는 땅을 취해 그것을 고치는 비보(裨補)가 자생풍수의 본 모습이라는 것. 가령 두 개의 큰 물이 모이는 지점으로 홍수 위험이 있는 곳이나 낭떠러지 밑으로 산사태의 위험이 있는 곳에 절을 세워 스님으로 하여금 유사시에 대비하는 것이 그 사례다. 따라서 명당이나 승지(勝地), 발복(發福)의 길지(吉地)와 같은 것은 도선풍수의 본질에서 떨어진 것이다.
저자는 자생풍수가 고려 시대에 일반화한 지리학이었다고 본다. 또 자생풍수의 맥은 도선_묘청_신돈_무학_이의신_홍경래_전봉준 등으로 이어졌으며 개성은 도선의 제자, 서울은 무학 스님의 제자들에 의해 사실상 결정됐다고 주장한다.
개성이나 서울이나 완벽한 명당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분지인 개성은 풍수에서는 장풍국(藏風局)으로 규모가 작은 데다 주산인 송악산이 달아나려는 형국이어서 오수부동격(五獸不動格)이라 하여 쥐 고양이 개 호랑이 코끼리가 서로 견제하여 개성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방책을 세웠다. 서울은 주산인 북악산이 서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고, 인왕산과의 적격성 논란도 있었다. 그래서 정궁인 경복궁을 중앙이 아니라 서쪽에 배치했다.
저자는 완벽하지 못한 풍수적 조건을 보완하는 이 같은 비보성을 비롯해 주관성 정치성 현재성 불명성 편의성 개연성 적응성 자애성 등 10가지를 자생풍수의 특징으로 제시한다. 명당을 고르는 방법은 자신에게 맞는 곳을 고르면 된다고 한다. 만약 어떤 곳이 최고의 명당이라면서 예컨대 대통령 자리를 보장하는 곳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꿈일 뿐이며 재앙이 멀지 않았다는 경고로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한다.
도선의 풍수가 중국 풍수와 다른 것은 땅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대한다는 것이며, 좋은 땅 나쁜 땅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맞는 땅, 맞지 않는 땅을 가리는 것이라고 한다. 화살과 과녁 사이에 공명이 일어나면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듯이 사람이 자기가 살고 있는 장소와 공명을 일으키는 곳이 명당이란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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