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강남대로변을 순찰하던 한 경찰관은 아름다운가게 논현점 앞 기증함을 터는 남자를 발견했다. 남자는 기증함 입구의 높이를 고려해 발 받침까지 준비해왔고, 그 위에 올라서서 갈고리로 능숙하게 내용물을 꺼내고 있었다. 제지하려 하자, 그는 "어차피 어려운 사람 준다고 공짜로 받은 것 아니냐"며 태연해했다.
아닌 게 아니라 아름다운가게 측이 신고하지 않는 이상 그를 입건할 수도 없는 노릇. 3년 전 이곳에서는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서너 명의 여성이 기증함 옆에 놓인 물품들을 나눠 가져가는 장면이 한 시민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연간 1,000만점에 달하는 기증품(2010년 기준)을 받는 아름다운가게가 거리의 기증함 내용물을 노리는 도둑들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경찰에 신고하거나 적극적 대응을 할 경우 시민을 잠재적 절도범으로 몰 우려가 있다고 보고, 인식 개선에만 힘쓰고 있는 실정이다. 기증함은 직접 가게에 방문하기 어려운 기증자들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것으로, 전체 기증물량의 약 5%(50만여점)를 담당하고 있다.
아름다운가게에 따르면 서울 논현점 앞 기증함은 1주일에 한 번 꼴로 내용물을 도둑맞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대로변에 있어 보는 눈이 많은데도, 값비싼 물건이 많을 거란 기대심리 때문에 전문털이범까지 생겨났다. 논현점 매니저 유정자 간사는 "지역특성상 200점 중 고가의 상품이 30~40점 정도 있어서인지 1명 혹은 두세 명이 짝을 지어 주기적으로 털어가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기증함에 들어가지 않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기증함 옆에 두고 가는 물건은 특히나 표적이 된다. 서울 양재점의 한 관계자는 "아침 출근길에 기증함 옆에 놓인 종이상자가 뜯긴 채로 몇 가지 물건만 남아있는 광경을 본 적도 있다"고 씁쓸해했다. 양재점은 달마다 한두 번 가량 이런 일이 발생한다.
지방에서는 기증함을 통째로 훔쳐간 일도 있었다. 고철 등 금속재료 가격이 오르자 누군가 고가의 스테인리스로 만든 기증함을 차량에 싣고 달아난 것이다.
현재 전국의 아름다운가게 기증함은 총 200여개에 이른다. 아름다운가게와 관공서 대형마트 학교 등에 설치돼 있는데, 대부분의 도난이 매장 앞 기증함에서 일어난다. 수거량이 많은데다 매장이 문을 닫는 밤시간을 이용하기 좋기 때문이다. 아름다운가게는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기증량의 10%정도를 도둑맞는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폐쇄회로TV를 설치하거나 경찰에 사건을 의뢰하는 등 적극적 대처는 하지 않고 있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는 비영리단체에서 시민을 감시하거나 불안감을 줘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아름다운가게 김광민 간사는 "노숙인이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가져가는 경우도 많은데, 이들을 경찰에 신고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기증품 수거를 자주 하는 등 물건이 안전하게 접수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기증함에 걸레조각 술병 담배꽁초 등 쓰레기를 버려 다른 물건이 오염되는 경우가 많은데, 기증품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 환경을 위해 쓰이는 만큼 우리 모두의 재산이라는 인식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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