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의 '묵살'에 검찰이 칼날을 벼른 것일까. 2년여 전 검찰의 부산저축은행 검사 의뢰 공문을 금감원이 사실상 뭉개버린 것으로 밝혀지자, 바로 이 문제가 최근 부실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 검찰이 금융당국을 정조준하게 된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중순 부산저축은행 비리 의혹 수사에 착수한 대검 중수부는 지난 2일 박연호 회장 등 대주주와 임원들을 무더기 기소하면서 이들의 불법대출 규모가 무려 5조원대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수사결과 계열은행 5곳을 거느린 업계 1위 부산저축은행의 실체는 거대한 '부동산투기 시행사'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은행 본연의 업무는 뒷전으로 팽개치고, 120개의 특수목적법인(SPC)을 직접 세워 부동산 사업에만 열을 올렸다. 대출 액수와 조건, 계열은행별 참여규모 등 주요 의사 결정도 대주주와 소수 임원들의 전횡으로 이뤄지는 구조였다. 금융당국의 감시ㆍ견제를 피하기 위한 분식회계 규모도 자그마치 2조원대를 뛰어넘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비리 집단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같은 부산저축은행의 '범죄 개요'는 이미 2008년 울산지검 특수부가 수사했던 사건에서 그대로 드러나 있다. 당시 울산지검은 박연호 회장과 김양 부회장, 강성우 감사 등 부산저축은행의 핵심 인물들이 영남 알프스골프장, 전남 곡성 골프장 사업과 관련해 임직원의 친척이나 지인 명의로 SPC를 만든 뒤, 사업성 검토 없이 각각 177억원과 36억원을 대출해 준 사실을 밝혀냈다. 김양 부회장이 엄창섭 당시 울주군수에게 2억5,000만원의 뇌물을 건넨 것도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다.
SPC를 통한 부동산 사업, 불법 PF대출, 그리고 정관계 로비가 모두 포함된 비리의 종합판이었다. 대검 관계자는 "울산지검 수사가 지금 중수부 수사의 축약판인 셈"이라고 말했다. 만약 금감원이 울산지검의 검사 의뢰를 받아들여 제대로 검사를 진행했다면, 부산저축은행의 병폐를 진작 바로잡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검 중수부 관계자는 "금융 감독기관의 감독 부실이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요인 중 하나"라고 꼬집기도 했다. 검찰은 1개월 반 동안의 수사로 이 같은 비리를 밝혀냈는데, 몇 개월에 걸쳐 여러 차례 이 은행을 검사했던 금융감독원은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검찰의 수사 초점이 자연스레 금융당국과 저축은행의 유착관계를 파헤치는 쪽으로 모아진 이유다.
일단 검찰은 첫 번째 단추는 제대로 꿴 것으로 보인다. 2년 전 금감원이 검사 의뢰를 무시하게 된 배경에 추후 검사반장이 된 금감원 간부 이자극(구속)씨의 뇌물 수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단순한 '부실 조사'가 아니라 고의적인 '불법 방조'였다는 증거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난해 3차례에 걸쳐 138일간 진행된 금감원과 예보의 공동 검사에서도 왜 비리를 밝혀내지 못했던 것일까, 거기에 배후는 없을까, 부산저축은행 검사와 관련해 뇌물을 받은 금감원 인사는 이씨 1명뿐일까 하는 의문이다. 향후 검찰 수사가 금융당국 직원들의 개인 비리만을 들춰낼지, 아니면 금융당국 고위층까지 포함한 조직적인 비리까지 캐낼지 주목되는 이유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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