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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빈 라덴 사살과 파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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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빈 라덴 사살과 파키스탄

입력
2011.05.1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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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새벽 미국의 특수부대원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한 저택을 급습하여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무역센터 빌딩을 알 카에다가 폭파한지 10년만의 일이다. 빈 라덴 사망으로 테러의 공포에서 벗어나 더 안전한 세상에서 살 수 있는가? 불행하게도 대답은 부정적이다. 알 카에다와 일부 동조세력은 자신들의 지도자였던 빈 라덴의 사망에 대한 보복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위협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미국과 상호 불신으로 갈등

그 열쇠는 이번 빈 라덴 작전에서 가장 곤경에 처한 파키스탄이 쥐고 있다. 2002년 이래 알 카에다 및 이슬람 테러집단과 싸운다는 명목으로 파키스탄은 미국으로부터 54억 달러에 달하는 원조를 받았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미국이 온갖 정보력을 동원해 추적해온 빈 라덴이 파키스탄의 가장 부유한 지역이며, 육군사관학교가 위치한 아보타바드의 한 저택에 숨어 있었다. 파키스탄 정부에 알 카에다와 내통하는 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려운 대목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급습 작전을 지휘하면서 파키스탄에 미리 작전계획을 알리지 말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작전이 마무리되자 미국은 파키스탄 정부에게 빈 라덴을 도운 세력이 누구인지 밝혀내기를 요구하고 있다. 막대한 원조를 공여한 미국으로서는 파키스탄에게 상당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이슬라마바드 등 파키스탄의 주요 도시에서 연일 시위대들이 반미 구호를 외치며 영토적 주권 침해에 대해 항의하고, 파키스탄 정부가 자국의 영토에서 아무런 공식적 승인 없이 작전을 감행한 미국에 강력히 항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 정부는 '주권 침해'라는 강력한 용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일방적 행동'이라는 말을 쓰면서 항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이에 만족하지 못한 이슬람 세력이 자다리 대통령 정부에 화살을 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과 이슬람 세력 사이에서 파키스탄 정부가 사면초가에 빠져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앞으로 미국이 파키스탄에 대해 어떠한 외교정책을 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빈 라덴 사살작전으로 다가오는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승세를 유지하기 위해 파키스탄에 보다 강경한 자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의회도 파키스탄에 경제 원조를 대폭 삭감하고, 군사적인 지원도 불허할 가능성이 높다.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인들의 정서를 감안하면 불가피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테러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파키스탄 정부를 지나치게 압박해서는 안 된다. 파키스탄 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노골적으로 부응하게 되면 국내의 정치적 통제력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 근대화와 민주화를 주창하던 베나지르 부토 여사가 2008년 총선 유세 도중에 암살당했던 것만 봐도 파키스탄의 정치상황이 얼마나 유동적인지 알 수 있다.

이슬람 세계와 우호관계 쌓아야

파키스탄 정부가 정치적 통제력을 상실하면 국제적인 테러 위협은 한층 커질 것이다. 탈레반이 아프카니스탄을 장악하기 전에 세력을 정비하고 힘을 구축한 것도 파키스탄 정부가 북부지역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를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지나친 압력은 파키스탄의 급진적 이슬람 세력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테러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미국 정부가 한 가지 더 유념해야 할 점은 이슬람 세계에 대한 보다 따듯한 접근이다. 힘에는 힘이라는 논리보다는 이슬람 세계와 선린의 우호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조속히 평화가 정착되고 정치적 안정을 찾도록 하는 것도 급선무 가운데 하나이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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