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만 해도 일본 도쿄는 서울에 비하더라도 담배천국이라고 불릴 만했다. 식당이나 길거리 등 어디서 담배를 피워도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길을 가며 담배를 피우다가 꽁초를 그냥 길바닥에 버려도 눈총을 살 일이 없었다. 저녁이면 수북이 쌓인 담배 꽁초가 다음날 아침이면 말끔히 치워졌고, 잦은 비가 담배 꽁초를 하수구로 씻어 내렸다. 도쿄 거리의 깨끗한 모습이 흡연자들의 성숙한 시민의식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충실한 환경미화원과 자연조건의 차이 덕분임을 알고 허탈해졌던 기억이 있다.
■ 도쿄의 그런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길가에 마구 버려진 담배 꽁초를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고, 길을 가며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없어 담배 연기에 시달릴 일도 없다. 2001년 치요다구를 시작으로 도심과 부도심에서 '노상금연'이나 '보행 중 금연'조례가 잇따라 만들어지고, 지금은 에도가와구 같은 변두리까지 확대된 것이 직접적 계기다. 도심에서의 길거리 흡연이 법규(조례) 위반으로 과태료 부과대상인 것과 달리 변두리 지역에서는 매너(공중도덕) 위반이지만, 흡연자들이 이를 구별해 달리 대응하지는 않는다.
■ 일본 사회의 지배원리의 하나인 다중의 압력 때문이다. 단속 공무원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핀잔과 눈총이 더 무섭다. 주눅이 든 흡연자들은 한적한 골목길을 찾아 들어가 담배를 피우고 나오거나 그런 골목길조차 찾을 수 없는 번화가에서는 흡연석이 마련된 찻집이나 패밀리 레스토랑, 파칭코점 등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큰 건물이나 시설 문밖의 구석진 곳에 더러 재떨이를 마련해 준 것만해도 감지덕지다. 그런 '피난소'조차 마땅찮아 여객기나 전철에서처럼 무조건 흡연 욕구를 억눌러야 할 곳이 적잖으니, 가히 흡연자 탄압과 다를 바 없다.
■ 담배연기가 싫은 사람을 생각하고, 사회적으로 금연을 권장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적한 길에서조차 흡연을 막으면서, 정작 다중이 이용하는 식당이나 찻집에서는 여전히 흡연 허용이 주를 이루는 것은 이상하다. 장애인의 바깥 출입을 막던 옛 장면이 겹쳐지는 이유다. 금연 실패자를 장애인 취급하는 분위기가 대세라지만, 지체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처럼 흡연자가 다소 불편을 감수하면 이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은 마련해 주는 것이 열린 사회의 모습이다. 3월에 시작된 서울시의 금연구역 지정이 확대 단계에서 꼭 거쳐야 할 고민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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