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현대화 과정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날카로운 필치로 그려 온 한국과 중국의 두 소설가가 만났다. 산둥(山東)성작가협회 주석인 소설가 장웨이(張煒ㆍ55)씨와 한국의 소설가 성석제(51)씨다.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서 열린 5회 한중작가회의 소설 분과 모임에서 성씨는 장씨의 소설 '해신에게 보내는 글'을 낭독하고, 장씨는 성씨의 '외투'를 읽으며 서로의 작품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 작가는 이와 별도로 마련된 대담에서 문학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국내에 <새벽강은 아침을 기다린다> 는 제목으로 작품이 소개된 장씨가 <구월의 우화> <고슴도치의 노래> 등의 소설로 중국 현대화의 문제점을 시적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반성한다면 성씨는 특유의 풍자와 해학의 입담으로 사회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두 작가는 작품 스타일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문학이 문명의 위기 속에서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다르지 않았다. 고슴도치의> 구월의> 새벽강은>
▦장씨= "중국 일반 대중들에겐 한국의 순수 문학보다는 통속 문학인 한류 드라마가 더 익숙한 게 사실이다. 한국의 순수문학을 읽고 싶은 사람도 많지만 예전에는 번역이 잘 돼 있지 않아 알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최근에 한국 순수문학이 계속 소개되면서 계기가 마련되는 듯 하다."
▦성씨= "한중작가회의가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1회 때 중국에 왔을 때는 한국 작가 작품이 번역된 게 거의 없었다. 회의에서 만난, 영향력 있는 중국 작가들의 소개로 여러 작품의 번역이 추진됐는데 이 회의가 그 돌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두 나라가 서로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서 문학의 교류가 필수적이다. 문학이 근본적으로 인간 내면의 본질을 건드리는 예술 장르기 때문이다. 각 나라가 가진 고유성과 개성에 대한 깊은 성찰의 작업은 문학만이 할 수 있는데 그로 인해서 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장씨= "통속적인 한류 드라마만 중국에 인기 있는 데 대해 순수문학 작가들이 섭섭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문화 교류를 위해서는 먼저 통속적인 것이 다른 나라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나라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그 나라 전체에 대해 알고 싶어할 테니까. 한류가 순수문학이 들어오는 교량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성씨= "전혀 섭섭하게 생각지 않는다(웃음). 나도 어린 시절에 열 살부터 열서넛 살까지 2,000~3,000권의 무협지를 읽었다. 아마 장 선생보다 무협지를 더 많이 봤을 것이다. 그런 독서로 중국의 역사나 고사성어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데 한류도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 여긴다."
▦장씨= "3일 전 어느 행사에 참석했는데 문학의 위기를 말하며 문학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200년 전 프랑스에서도 이미 그런 얘기들이 나왔다. 문학은 끊임없이 죽었다 부활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 같다. 문학의 위기를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성씨=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가들은 세파 위에 떠 있는 배와 같아서 파도가 잔잔하면 오히려 쓸 게 별로 없다. 위기나 모순이 격화될수록 작가들의 에너지는 높아진다. 작가는 어떤 현상에 대해 묵히고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쳐 오랫동안 유효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당장 빈곤과 도농격차, 소외 등의 문제가 눈에 밟히긴 하는데 작가로서 유일한 대응법은 쓰는 것밖에 없지 않나."
▦장씨=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급격히 발전하고 국제화하면서 물질적으로 부유해지고 있지만 환경오염, 전통윤리 상실, 빈부 격차 등 여러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가다 보면 인류 사회가 붕괴하는 단계로 가지로 않을까 우려스럽다. 작가로서 이런 문제의 해결책을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까. 작가는 일단 인간의 정신, 신앙, 윤리, 문화에 역량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한 작가의 힘이 부족해도 여러 작가들이 힘을 합치면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씨= "인구는 늘고 수요는 커지고 있지만 자원은 한정돼 있다. 누가 봐도 파국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마치 잔칫집에서 집이 불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흥청망청 즐기는 분위기다. 작가들이 정책으로 이를 바꿀 수는 없다. 효과적 방법은 독자가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일깨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독자를 윽박지르거나 강제로 협박하고 싶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간이고 인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웃음, 연민, 추억 등 인간다운 것을 되새기고 우리가 같이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깨달음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걸 무시하고는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다."
시안=글·사진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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