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위(不作爲)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고, 작위(作爲)는 규범적으로 해야 할 행위를 하는 것 내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을 뜻하는 법률용어다. 기자는 의약분업의 진통이 한창이던 8년 전 보건복지부를 취재할 때 한 중견간부로부터 '부작위의 작위'라는 색다른 말을 들었다. 양의사가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된 한약제제를 처방한 데 대해 보건복지부가 위법 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을 2년 동안 하지 않은 배경을 복지부의 한 중견간부는 이 한마디로 압축했다. 예외적인 상황에 대해 법적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의사와 한의사라는 두 이해집단의 괜한 충돌과 반발을 초래하지 않는 게 낫다는 정책적 판단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최근 시행사가 수십억원의 분양금을 챙겨 달아난 경기 성남시의 한 상가건물에서 입주상인과 건설회사 용역직원 사이에 쇠파이프가 출현한 폭력사태가 수일간 빚어졌는데도 관할지역 경찰서가 "민사문제" "자기들끼리 이권다툼"이라는 이유로 한동안 수수방관한 걸 보면 '부작위의 작위'는 여전히 중요한 행정행위로 기능하고 있지 않나 싶다.
사실 부작위 내지 부작위의 작위는 법(규정)과 도덕, 양심과 이해득실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상이고 대개는 성가신 상황에서 빚어지는 일이다.
지난달 14일 폐결핵을 진단을 받은 한 독거노인이 보건소와 시립병원을 8시간 동안 전전하다 서울의 한 지하철 승강장에서 일흔 여덟 살의 고달픈 생을 마감했다.(본보 4월16일자 사회면) 고열과 기침에 눈이 풀리는 중한 병세로 거동도 쉽지 않았던 이 할머니는 제대로 응급조치도 받지 못하고 병원을 빠져 나왔다. 며느리의 건강보험에 등록돼 있어 치료비가 나올 것이라는 병원 측의 말에 그냥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당시 이 병원 의사가 할머니 상태를 얼마나 제대로 살폈는지 알 수 없으나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 및 지원의무를 다했는지 의문이다. 더욱이 이 시립병원은 오랜 역사의 결핵전문병원이다.
일도양단(一刀兩斷)으로 판단하기에 세상 일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상황을 어떻게 분별하고 행동할 것이냐는 문제는 중요하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은 영하의 날씨에 만취한 노숙자를 서울역 역사 바깥으로 끌어내 유기(遺棄)혐의로 기소된 역무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적이 있다. 담당판사는 "비록 노숙자가 숨졌더라도 형사책임을 물을 순 없지만 적극적 구호 조치를 했다면 노숙자가 생사를 달리했을 수도 있는 만큼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역무원이 도덕과 양식에 기초해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했더라면 당시에는 성가신 일 일지언정 법적 고초를 겪는 일도, 죄책감을 느낄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판사의 표현처럼 망인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 참으로 고달픈 하루"를 보내지도 않았을 게다. 할머니의 슬픈 사연도 마찬가지로 없었을 거다.
앞에 언급했던 의사의 한약제제 처방에 대한 판단유보에 대해 직무유기라는 비판이 제기된 뒤 복지부는 부랴부랴 '의사의 면허범위 내라 볼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하지만 이해단체의 반발과 충돌이 있었다는 얘기는 그 뒤 듣지 못했다.
정진황 사회부 차장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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