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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허공에 부친 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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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허공에 부친 초청장

입력
2011.05.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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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9일 베를린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내년 3월 서울 핵 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초대장을 띄웠다. 이 초대장에 별첨된 전제조건과 상관 없이 김 위원장이 응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대통령 자신과 외교안보 참모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왜 거절 당할 게 뻔한 초대장을 보냈을까.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우선 습관성이다. '비핵ㆍ개방 3000''서울 평양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그랜드 바게닝'등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제안을 받을 상대의 처지나 상태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허공에 부치는 편지다. 사전 의사 타진이나 조율 같은 것은 물론 없다.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을 목표로 한다면서도 실질적으로 아무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습관적 헛발질 시리즈다. 문제해결 의지 또는 지능을 의심케 하는 행태이다.

무시될 게 뻔한 김정일 서울 초청

다음으로 변형된 대북 공세다. 핵 안보정상회의는 핵 물질의 안전한 관리와 확산 방지라는 전지구적 명분 하에 열린다. 이런 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남한 대통령의 선한 뜻을 북한 정권이 걷어차면 국제적 비난을 받게 된다. 초청장에 날카로운 비수를 숨겨 보낸 셈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베를린에서 편서풍에 실어 보낸 대북 전단지다. 최근 고조되고 있는 국내외의 대화 압박을 비껴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계산 하에 보낸 초청장이라면 최소한 보수진영에서는 머리 좀 썼다고 평가해 줄 것이다.

북한 정권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1일 자에 다소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이 대통령이 종전의 대결정책을 슬그머니 접고'6자회담 테두리 안에서의 북남 대화'에 나서기 위한 명분 세우기라는 것이다. 최근 평양과 서울을 다녀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편에 전한 남북정상회담 제의에 직접 화답하지 않은 것을 유감스러워 하긴 했으나 이 대통령의 대화 의지만큼은 어느 정도 인정한 셈이다.

이 대통령의 제의가 공허하다는 다수 언론의 지적에 "통치자의 정치적인, 그리고 적극적 메시지"라는 청와대 핵심 당국자의 설명과 가장 부합하는 해석일 수도 있겠다.

어느 해석이 맞든 북한 정권으로서는 초청장에 진정성이 담겼다고 보지 않을 게 뻔하다. 우리 정부는 남북대화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전제로 북한에 진정성을 요구한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의 사과 및 진실된 핵 폐기 의지를 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북측도 남측의 진정성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대화와 협상의 대전제는 상대방 존재의 인정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출범 후 명백하게 김정일 체제를 인정한 적이 없다.

말로는 김정일 체제 붕괴를 원하거나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에서는 끊임 없이 흡수통일이나 북한 내 저항세력 지원을 통한 김정일 체제 붕괴를 노린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이 독일 방문 중에 한 언급이나 통일 관련 이벤트들도 김정일 정권에는 명백한 흡수통일 추구로 비쳤을 것이다. 요즘 통일부의 업무는 김정일 체제 붕괴를 전제로 한 통일방안 연구에 집중돼 있다.

진정성 담보할 국제적 틀 고민을

이런 신호를 보내면서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는 요구가 먹힐 리 없다. 리비아의 카다피가 당하고 있는 상황을 핵무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북한이다. 우여곡절 끝에 6자회담이 재개된다 해도 별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핵 폐기의 진정성을 요구하는 이상으로 북한은 핵 폐기 후 체제보장과 경제지원 보장에 대한 확고한 진정성을 요구한다. 이 본질적 충돌을 해소할 길을 찾지 못하면 북한의 도발과 핵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생존을 최대이익(vital interest)으로 추구하는 국가들 간 약속의 진정성은 믿을 게 못 된다. 진정성을 담보하고 강제할 수 있는 국제적 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남북은 지금 그런 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서로 공허한 진정성 타령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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