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에서'이중(二重) 권력'은 '정치 격변기에 한 나라 또는 체제 안에 경쟁적, 대립적인 두 개의 권력이 공존하는 상태'를 말한다. 요즘 한나라당 상황이 딱 그렇다.
신주류인 황우여 원내대표와 구주류와 가까운 정의화 비상대책위원장이 논란 끝에 당 대표 권한을 거의 절반씩 나눠 갖기로 한 것이 지난 11일. 이후 '두 권력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됐다. 황 원내대표는 '외치(外治)'를, 정 비대위원장은 '내치(內治)'를 맡는 것으로 업무 분장이 이뤄졌다고 보면 된다.
'당 대표 권한대행' 직함을 가져간 황 원내대표는 13일 통상 당 대표가 하는 '대외 행보'를 시작했다. 그는 오전엔 자유선진당 변웅전 대표를 찾아가 만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울 상도동 자택을 방문했다. 오후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를 만나기 위해 동교동으로 향했다. 18일 광주에서 열리는 5ㆍ18 기념식에도 황 원내대표가 사실상 당 대표 자격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정 비대위원장은 '모양새'를 고려한 듯 기념식엔 참석하지 않고, 같은 날 열리는 5ㆍ18 기념 음악회에만 참석할 것이라고 한다. 물론 황 원내대표는 '원내 사령탑' 역할도 하게 된다.
정 비대위원장은 '대표 권한대행'이라는 타이틀을 넘겨준 것 때문에 당초 '사실상 권력 서열 2위가 된 것'이라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정 비대위원장이 가진 권한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비대위가 당 진로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당대회의 룰을 결정하게 되는데다, 정 비대위원장이 인사와 재정 등 당무를 전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또 5월엔 국회가 열리지 않기에 언론 등의 관심이 비대위에 쏠릴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당 안팎에선 '실제로는 공동대표 체제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미묘한 권력 구도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도 적지 않다. 당 사무처에서는 국회와 여의도 당사에 있는 당 대표실을 두 사람 중 누가 쓸지, 또 당 대표실에 배치돼 있던 사무처 인력은 어느 쪽을 지원해야 할지 등에 대해 한 때 고민했다고 한다. 논의 끝에 당 대표실은 당내 회의 등 공식 일정이 없을 때는 비워 두고, 사무처 인력은 두 사람을 모두 보좌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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