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무어와 에드 해리스가 함께 출연한다. 중년의 사랑이나 가족애를 그린 영화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곧 촬영에 들어갈 미국 TV영화 '게임 체인지'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배경으로 존 매케인(에드 해리스)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새라 페일린(줄리안 무어)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2012년 미국 대선의 유력 후보 중 하나인 새라 페일린을 카메라 앞에 호출한다니 참 대단한 할리우드다.
할리우드는 죽은 권력은 물론이고, 산 권력도 좋은 먹잇감으로 삼아왔다. '닉슨'(1995)과 '더블유'(2008)는 각각 리처드 닉슨,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성장 과정, 인간적 고뇌 등을 다뤘다. '프라이머리 컬러스'(1998)는 빌 클린턴 부부의 정치적 부상과 권력 쟁취를 그렸는데, '게임 체인지'는 공화당판 '프라이머리 컬러스'가 될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동서냉전 구도 구축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J 에드가 후버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삶을 그린 'J 에드가'는 명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지휘 아래 내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 중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에 대한 영화는 역사의 재평가와 함께 현재를 되돌아 보게 한다. 거물의 굴곡진 삶 자체는 관객의 가슴을 사로잡을 좋은 드라마다. 식민지배와 분단, 전쟁, 군사독재, 민주화 등 드라마틱한 20세기를 보낸 우리 역사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정치적 인물들을 여럿 품고 있다. 그런데도 스크린에서 그들을 쉬 만나지 못한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 대통령 등을 스크린에 불러냈을 때 벌어질 전쟁과도 같은 논란은 2004년 '그때 그 사람들'을 통해 이미 겪었다. 이병철 정주영 등 신화적인 경제인에 대한 영화도 충무로에선 언감생심이다.
'죽어도 좋아'(2002)와 '너는 내 운명'(2005) 등 실화에 뿌리를 둔 영화를 연달아 만든 박진표 감독은 2008년 어느 자리에서 만났을 때 "다시는 실화를 다룬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매번 소송에 시달려 힘들었다"고 했다. 실존 인물, 그것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인물을 스크린 중심에 세울 때 제작진이 겪게 될 극심한 고난을 짐작할 수 있었다.
특정인의 명예는 당연히 지켜져야 하지만 영화 한 편으로 한 인물이 영원히 규정지어진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여러 영화들을 통한 다양한 접근과 해석이 있어야 역사적 인물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다. 결국 정치적인 관용이 있어야 좋은 정치 영화도 만들어진다. 충무로가 안타까워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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