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 내 아버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내 아버지

입력
2011.05.09 12:01
0 0

최근 들어 아버지의 자녀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얘기가 자주 나온다.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자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 아이들도 아빠와 많은 대화를 하며 자라야 할 텐데 생각하다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일들이 기억났다.

아버지에 관한 어린 시절 기억 두 가지. 하나는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겨울 새벽, 아버지가 군복을 차려 입던 소리에 잠이 깨곤 했던 기억이다. 강원도 최전방 연대장이던 아버지는 추운 겨울 밤에 보초를 서는 장병들이 염려돼서 새벽 1~2시에 순찰을 돌곤 하셨다. 잠결에 아버지가 나가시는 소리를 들으며 "아빠는 이렇게 추운 겨울 새벽에도 일을 하시는구나.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 기억이 난다.

늘 강하고 너그러운 초인

두 번째는 아버지가 책 읽는 모습이다. 학생 시절 공부를 잘해서 두 번이나 월반하셨다는 아버지는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다. 어릴 때, 가끔 새벽에 깨어 거실에 나가보면 책을 읽는 아버지를 뵐 수 있었다. 결국 아버지는 군 생활을 하면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전역 후 교수로 생활하셨다. 요즘도 아버지와 외출하면 "선배님 모습을 보면서 저도 틈틈이 공부해 전역 후 새로운 직업을 가졌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반갑게 인사하는 후배 분들을 만난다.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에는, 문득 한겨울 새벽에 예식이라도 치르듯 각을 잡아 군복을 입고 순찰을 나가던 아버지의 모습, 새벽부터 꼿꼿이 앉아 책을 읽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러면 내 마음도 다시 강해짐을 느낀다.

우리 세대의 다른 모든 아버지들처럼, 나의 아버지도 힘들고 거친 세월을 보냈다. 중학교에 다닐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아버지는 자원입대를 하셨다. 육사를 나와 장교가 된 다음에는 세 살 된 나와 어머니를 서울에 두고 베트남 전에 참전하였다. 1970년대 합참에 근무할 때는 당시 북한에 열세였던 군비확장 전략을 세우는 실무를 맡아 초인적인 열정으로 일하셨다. 장군이 된 다음에도 중학생 아들이 있는 50대에 전역하여 행정학 교수로 새로운 길을 걸어야 했다.

전쟁을 두 차례나 몸소 겪고, 매우 고단한 시절을 살아왔지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한없이 너그럽고 낭만적인 분이다. 이태리 가곡을 즐겨 부르고, 영화를 좋아하여 개봉 영화를 거의 다 보신다. 가족과 주말 명화를 보고 나면 매번 "아! 정말 잘 된 영화야" 하면서 좋아하셔서, 가족들이 모두 웃게 된다.

아버지는 시간만 나면 나와 남동생과 놀아주셨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영화'슈퍼맨'이 개봉한 첫 주말에 우리 남매에게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몇 시간 줄을 서서 표를 사오셨다. 그 무렵 아버지가 얼마나 바쁜지 잘 아는 동생과 나는 '아버지의 슈퍼맨'을 두고두고 감동으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우리가 무엇이건 조금만 잘해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학교에서 상을 받은 날이면 "아빠가 얼마나 좋아하실까"하는 기대감으로 집에 가는 것이 무척 기다려졌다.

이제 아버지는 일흔이 훨씬 넘으셨지만 여전히 강하고 당당하다. 아직도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주신다. 아버지의 책에 나오는'성공'의 정의를 보자면, 아버지는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을 사셨다.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

"자주 웃고, 많이 사랑하는 그는 성공을 이루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으로 완수하였던 그는 성공을 이루었다. 그가 세상에 태어날 때보다 더 나은 세계를 남기고 떠난 그는 성공한 것이다. 타인에게서 항상 최선의 장점을 찾고, 그가 가진 것 중 최선의 것을 남에게 준 그는 성공한 것이다. 그의 생애가 감화인 사람, 그에 대한 기억이 축복인 그는 성공을 이룩한 것이다".

5월을 맞으니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이 더욱 새롭다. 더불어 힘든 세월을 거치며 가족과 나라를 위해 열심을 다해서 살아오신 세상의 아버지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오늘 저녁에는 아버지와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해야겠다.

김은주 연세대 교육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