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로 둘러싸인 녹색 환경이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 은총은 실로 놀랍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영국 건강학자 프란세스 쿼가 최근 연구에서 식물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이 건전한 신체와 정신을 향유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보도했다. 그가 식물이 많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교한 결과, 전자가 후자보다 인지력, 자기 수양 정도, 충돌 조절력이 훨씬 높았다고 한다. 머리가 더 휙휙 잘 돌아갈 뿐 아니라 더 참을성 있고 침착하다는 얘기다.
이뿐 아니다. 수술 환자의 경우엔 수술 후 체력 증가, 면역 체계 향상에 녹색 환경이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당뇨 환자도 혈액 내 포도당 수치가 줄어 큰 효험을 봤다. 반대로 녹색 환경이 부족한 곳에 살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불안장애 우울증에 노출될 확률이 높았다. 이런 정신적 질환의 영향으로 비만 심장혈관질환 등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는 "체력 일관성 집중력 모두에서 환경에 따라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이는 공장에 갇힌 닭 소 돼지나 실험실에 있는 쥐를 자연농장에 있는 동물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자연에 있는 동물들은 더 건강하며, 긍정적 패턴을 가지고 소통한다. 사람도 똑같다. 자연녹지가 많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신체 능력이 높다. 또 서로를 신뢰하고 돕기를 원해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더 좋으며, 활발한 사회를 이룬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아프고 외로움을 많이 느끼며 개인적이다"고 설명했다.
녹색 환경이 건강과 정신에 이롭다는 연구 결과는 쿼의 논문 말고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널려 있다. 녹색을 안 보고 살면 단순히 건강과 정신적 능력이 나빠지는 데 그치지 않고 일찍 죽는다는 연구 결과까지 있다. 이런 걸 보면 사실 은퇴 후 가장 이상적 주거지는 숲이나 농경지 주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15세 이상 시민 4만7,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최근 발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나이가 들어 정년 퇴임한 뒤 희망하는 주거 형태로 응답자 중 가장 많은 41.8%가 '자녀와 가까운 곳에서 혼자 사는 것'이라고 답했다. 자녀들이야 당연히 도시에서 살 테니 도시 어디서 뭉개 보겠다는 얘기다. 그것도 자녀 집 지척에서 말이다.
이런 선택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자녀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싶어서 일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자녀 집 바로 옆에서 거의 매일 자녀 얼굴을 보며 계속 간섭하고 싶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식의 삶은 자녀와의 관계만 나쁘게 한다. 자주 보면 아무래도 싸울 일이 많아지는 것이 인간지사다. 특히 앞서 지적대로 도시 생활은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황폐하게 한다. 따라서 먼 지방이 안 된다면 교외라도 자녀 집과 좀 떨어진 곳으로 나와 녹색 환경 속에서 사는 것이 정답이다.
녹색 노후 생활은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도시에서 사는 비용의 70~80%면 교외에서 멋지게 잘 살 수 있다. 지방에 가면 비용은 아예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
물론 의료 시설이 고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지역에도 훌륭한 병원들이 꽤 많으니 그런 곳 가까운 어디로 가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은호 문화부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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