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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집단 심리치료하는 정혜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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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집단 심리치료하는 정혜신 박사

입력
2011.05.0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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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죽은 사람이 편안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아 그냥 확…' 하는 생각…."(쌍용자동차 노동자 김정욱씨ㆍ41)

지난 7일 경기 평택시 일자리센터 2층. 무릎을 맞대고 앉은 7명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한때 자살을 생각했다고 했다. 2009년 5월22일 쌍용자동차 구조조정에 반발해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77일 간 농성을 벌이다 해고되거나 무급휴직 처분을 받고 회사를 떠나야 했던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지난 3월 27일부터 매주 토요일에 집단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힘들다"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했던 이들을 한 데 모아 속 얘기를 끄집어낸 이는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혜신(48)씨. 정씨는 쌍용차를 떠난 노동자 2,500여명 중 지난 2월 말 13번째(가족 포함)로 숨진 임무창씨의 돌연사 소식을 접하고 "더는 견딜 수가 없어서" 이들에 대한 치료를 자청하고 나섰다.

정씨는 오전에 노동자 8명, 오후에는 이들의 부인 6명을 각각 2시간30분 동안 만난다.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문득 베란다 창문을 열고 투신을 생각하거나, 남편의 넥타이로 목을 조르는 스스로를 발견한다는 이들을 정씨는 "죽음에 대한 긴장감이 없어진 상태"라고 표현했다. '죽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단계를 넘어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식으로, 죽음을 매우 가깝게 여기게 된 상태라는 의미다.

"이들의 증상은 우울증이 아닙니다. 전쟁과도 같은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마저 훼손당한 후 겪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이지요."

집단 심리치료는 참가자들이 지난 한 주일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그때 느낀 감정을 자세히 묘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나만 답답한 줄 알았는데 다들 그렇구나" "저 사람은 저 상황에서 저렇게 느끼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위안을 얻게 된다.

정씨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말하는 이와 눈을 맞추고 연신 고개만 끄덕였고, 함께 눈물을 훔쳤다. 이따금씩 농담이 나오면 가장 크게 웃어줬다. 그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도망치면 되는 줄 아는데 그게 오히려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며 "(고통을) 다 꺼내놓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쌍용차의 쌍시옷자(ㅆ)만 들어도 두통이 나고 악몽을 꿨다"던 이들은 많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자녀 문제가 여전히 걱정이다. "한 조합원의 중학생 자녀가 얼마 전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렸다. 나도 아이가 원하는 걸 못해줄 때가 많다. 행여 우리 아이도 그렇게 될까봐 겁난다"(노동자 부인 조은영씨ㆍ37) "면허증을 갱신하러 경찰서에 가려고 하는데 여섯 살 아들이 '경찰이 아빠 체포한다'며 말렸다. 아들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김득중씨ㆍ42)

실제로 한 노동자의 여섯 살짜리 아이는 친구들과 놀다가 나무에 올라가 "자살할 거야"라고 말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고, 전경버스가 떠올라 아예 버스를 타지 못하는 등 극도의 불안 증세에 시달리는 아이도 있다.

정씨는 정부를 비롯한 우리사회 전체가 PTSD 치료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는 "PTSD는 광주민주항쟁 같은 사건이나 해외 파병, 일본 대지진 등 사회정치적 맥락을 가진 경우에 집단적으로 발생한다"며 "개인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넘어서기 때문에 세계 60여개국은 별도로 치료센터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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