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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빈 라덴의 죽음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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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빈 라덴의 죽음 이후

입력
2011.05.0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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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초 독일 프라이부르크 부근 흑림(Schwarzwald)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숲에 텐트를 치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안내소에 독일어와 영어로 쓴 쪽지 두 장이 나붙었다. 그리고 야영장의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몰려 심각한 표정으로 글을 읽었다. 며칠 전 영국 런던의 지하철에서 테러가 일어나 많은 인명이 살상됐다는 내용이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었지만, 가까운 나라에서 대형 테러가 일어났다는데 대한 놀라움과 걱정으로 그때만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독일 여행을 마치고, 당시 연수 차 거주하고 있던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쾰른-본 공항에 들어섰을 때는, 경찰이 쫙 깔려 있어 긴장감이 더 팽팽했다. 통상 공항 출국대에 들어서면서 한번 하는 짐 검사를 비행기 탑승구 앞에서 다시 한번 했다. 손에 든 작은 가방과 배낭을 샅샅이 뒤지고 신발도 벗겼다. 평소 유럽 공항의 허술하고도 자유로운 입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금 보면 별 것 아니지만 당시에는 그런 분위기에서 한동안 테러의 가능성에 긴장했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깊은 상처와 고통

그러니 9·11 테러로 미국인이 받은 충격과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객기를 탈취해 고층 빌딩과 충돌함으로써 3,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 영상은, 지금 보아도 믿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그렇기에 미국이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잡겠다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것이나, 빈 라덴이 사살된 뒤 미국인들이 환호한 것도 감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빈 라덴을 사살한 것이 현명하고 전략적인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사살이 가져올 결과가 말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9·11 이후 알 카에다는 직접 테러를 한 적이 거의 없다. 알 카에다가 정신적 영향을 주었을지는 몰라도, 2004년 3월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폭발이나 2005년 7월 런던 지하철 테러 모두 현지인들이 저지른 것이었다.

게다가 9.11 테러 이후 이슬람 운동에는 극단주의 세력이 정당 활동으로 돌아서는 작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이나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가 총선 등에서 높은 지지를 받으며 합법적인 활동으로 전환했다. 그러니 미국이 잘만 관리하면, 알 카에다를 이름만 남은 존재로 전락시킬 수 있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었다. 미국이 빈 라덴의 존재를 파악한 이상 그냥 두기는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이번 일이 아쉽다고 본다면 거기에는 그런 까닭이 있다.

미국의 외교 전문가 존 페퍼가 주장한 것처럼, 가족이 보는 앞에서 비무장상태로 총탄을 맞은 그는 순교자처럼 죽었다. 그런 그를 추종하는 무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전문가들은 반미 저항세력들이 어떤 식으로든 그의 죽음에 대한 보복 테러를 할 것으로 전망한다. 당장 알 카에다가 "미국의 기쁨이 슬픔으로 바뀔 것"이라며 보복을 선언했다. 탈레반도 아프간 칸다하르에서 자살폭탄공격을 감행했다.

보복과 비극의 악순환 걱정

9·11 테러의 고통이 미국에만 국한됐던 것은 아니다. 9·11 이후 미국이 침공한 아프간과 이라크 혹은 그 이웃나라에서는 미국 혹은 미국에 동조하는 정부에 반발한 세력들이 쉬지 않고 테러와 공격을 자행했다. 성격은 좀 다르지만 우리나라 역시 미국의 파병 요구로 심각한 국론 분열을 겪었다. 빈 라덴이 죽자마자 아프간의 한국 기지가 휴대용 로켓발사기 공격을 받은 것은 우리가 향후 테러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현지의 위험을 간과하는 한국인 기독교원리주의자들은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물론 무고한 시민을 죽게 한 빈 라덴의 행동은 어떤 식으로든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또 다른 죽음을 부르고 그래서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면 그것은 9·11 못지 않은 비극이 될 수 있다.

박광희 편집위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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