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약 비디오게임이 책보다 먼저 발명되었고 주류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활자만 가득 적힌 '책'이라는 것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스티븐 존슨은 저서 에서 대중이 아마도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썼다.
■ "책을 읽으면 만성적으로 감각기능이 저하된다. 비디오 게임이 영상과 음향효과로 가득 찬 3차원 세계를 선사하는데 반해, 책은 단순히 종이에 단어가 나열된 것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독서는 아이들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독자를 혼자만의 공간에 고립시킨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도서관'에서는 활발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어야 할 아이들이 책상에 혼자 앉아 말없이 책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아이들이 독서에 빠져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책의 내용이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스토리라는 점이다. 독자는 단순히 앉아서 주입되는 이야기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참여형 스토리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게 책의 이러한 특징은 경악할 만하다."
최근 일각에서 "뇌를 짐승으로 만든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게임의 부정적인 영향만 강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혹시 기성세대의 게임에 대한 관점에 지나친 편견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게임의 순기능
사실 게임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점도 분명히 있다. 우선 게임은 소비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외로움의 경감 또는 누군가와 어울리고자 하는 사회적 욕구를 만족시킨다. 현대인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과거 사람들이 운동이나 취미 활동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해왔듯이, 최근에는 게임도 이러한 역할을 분담하게 된 것이다.
게임은 예술ㆍ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과거의 창의력 표현 수단은 문자와 그림, 음악, 영화 등이었는데 게임은 이 모든 것을 통합시키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라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책이나 영화 콘텐츠가 단방향성의 주입식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데 반해, 게임은 플레이어가 스토리의 전개에 참여하는 양방향성의 특징을 가진다.
그리고 게임은 시공을 초월한 시뮬레이션에 효과적이다. 미래와 현재를 오가는 경험은 책이나 영화에서도 주로 사용되는 형태였지만, 다양성과 경제성은 물론 몰입을 통한 대리체험의 효과도 단연 게임이 우수하다. 이는 곧 게임을 통한 교육적 효과도 다른 매체에 비하여 월등히 높게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실제로 관련 연구에 따르면 게임은 추론 및 사고력 향상 효과, 정보 습득 등에서 플레이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게임은 G-러닝(게임기반학습) 분야에서 많이 응용되고 있다.
게임과 IT기술 발전의 선순환
네덜란드의 문화학자 호이징가는 인간의 본질을 유희라는 관점에서 파악하였다. 그는 유희가 그 자체로는 비생산적 행위이지만, 점차 사회ㆍ문화적 기능을 갖는 인류사에 필수적 요소로 발전하였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오늘날 게임 산업도 다른 IT 산업의 발전을 융ㆍ복합적으로 촉진시키고 있다.
게임 어플리케이션은 국내의 스마트폰 확산을 가속화시킨 측면이 있는데, 역으로 스마트폰의 보급은 새로운 게임 장르의 발전을 유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휴대 인터넷 환경이 보편화되면서 소셜 게임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가 나타나게 되었고, 개인용 위치기반 서비스가 가능해지면서 증강현실 게임 분야를 발전시키고 있다. 그리고 동작인식 센서와 3D 영상 기술의 등장은 체감형 게임이라는 새로운 양식의 게임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최근 판매되기 시작한 유아용 영상통화 로봇 '키봇'은 몸을 만졌을 때 음성과 동작으로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등의 게임적 요소를 담고 있다. 단순했던 전화기가 복합 에듀테인먼트 기기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는 과거에는 없었던 IT 시장의 영역을 개척한 사례이다.
이처럼 게임 콘텐츠는 새로운 IT분야의 발전을 촉진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특정 IT 기술은 새로운 게임 장르의 개발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선순환 관계 속에서 IT기술과 문화는 지속적으로 진화해 나가게 될 것이다.
류성일ㆍ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 ryu0121@k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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