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어버이날이다. 2008년 돌아가신 선친(先親)이 더욱 그립다. 선친은 소화기관이 좋지 않으셨는데, 생전 친지의 장기이식 권유를 거부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70대 중반이라 병원도 권유하지 않았지만, 당신께서도 "내가 더 살겠다고, (장기이식을 위해)자식 몸에 칼을 댈 수 없다"고 단호히 말씀했다는 것이다. 생의 마지막에도 당신보다 자식 걱정을 했다는 걸 알고는 너무 슬펐다.
자식에 헌신적인 것은 선친의 경우만이 아닐 것이다. 나도 그렇고, 다른 부모도 모두 그렇다. 그런데 자식을 끔찍하게 여기면서도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게 미래 부담을 자식들에게 지우는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져 있다.
원인은 국민연금이다. '저출산-고령화'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다음 세대의 희생 위에 기성세대가 노후를 보장받는 구조다. 1883년 독일에서 인류 최초의 공적연금(65세 이상 지급)이 도입됐을 당시 평균 수명은 50세도 되지 못했다. 평균 수명이 80세인 우리의 경우라면 100세 무렵부터 연금을 주는 구조였으니, 재원 고갈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명이 80세인데, 130년 전 기준에 따라 60대부터 연금을 주는 방식은 지탱할 수 없다. 현재대로라면 초등학교 1학년인 내 아들이 63세가 되는 2068년 기금이 바닥난다. 당국은 '재정을 5년마다 점검하고 대비해 이후에도 연금이 나오게 할 것'이라지만 '더 내고, 더 늦게, 덜 받게'될 건 뻔하다. '아들아, 미안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국민연금을 없애자는 얘기는 아니다. 320조원이 넘는 기금을 해체할 때의 혼란도 있고, 저소득 계층일수록 혜택을 더 받는 재분배 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또 근본적 수준의 연금개혁이 이뤄지거나, 청ㆍ장년 1명이 노인 10명을 능히 부양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거나, 대재앙이나 질병으로 기성세대 수명이 급감하는 등 연금의 장기 생존이 가능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몇 가지 모순적 행태는 여전히 문제다. 국민연금은 95조원을 국채에 투자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한 국고채(330조원 가량)의 3분의 1에 육박한다. 국채는 최고 안전자산이지만, 납세자인 국민이 강제로 가입된 국민연금이 투자하면 다르다. 가입자에게 연금 주려고 상환을 요구하면, 정부는 가입자인 국민에게서 세금을 거두기 때문이다. '가입자=납세자'이므로 오른쪽 주머니 채우려고 왼쪽 주머니 돈을 꺼내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국채 발행과 상환시점 차이만큼 세 부담이 미래로 이전되기도 한다. 30년 차이라면 부모가 쓴 돈을 30년 뒤 딸이나 아들이 세금으로 부담하는 셈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공공 통제가 느슨했을 때 정부가 빌려 쓴 뒤 갚지 않은 이자도 해결돼야 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정부는 연금을 강제로 공공자금에 예탁해 사용했는데, '나라살림에 쓴 건데 무슨 이자냐'는 식으로 주지 않고 있다. 미지급 이자는 문제가 최초 불거졌던 2005년에도 2조원이 훨씬 넘었다. 연금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소송 걸면 질 것 같다'는 변명 대신 이제라도 기획재정부와 법정에서 다퉈봐야 한다.
국민연금으로 재벌을 압박하겠다는 발상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려고 연금 지분의 의결권을 행사하자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회적 책임과 해당 기업 주가와의 상충관계는 어찌할 것인가. 이번에도 '나라를 위해 주가가 떨어진 건데'라고 할 수 있을까.
국민연금에 대해 공무원과 정치권은 최대한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의 모순은 그들에게서 비롯됐다. 게다가 그들 대다수는 국민연금과의 통합을 주저하는 다른 연금의 가입자이기 때문이다.
조철환 경제부 차장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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